[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자동차 수리 때 ‘정품’ 또는 ‘순정부품’을 써야 할지를 놓고 고민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새 차를 이용하다가 수리하거나 부품 교체를 할 때라면 순정부품을 쓰려는 심리가 더 강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정비 기사에 따라선 비순정부품을 아예 ‘비품’이라 부르는 이도 있다. 이럴 경우 순정부품에 대한 애착은 더욱 강해지기 마련이다. 족보에도 없는 말이지만 ‘비품’이란 말이 주는 어감이 너무나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비품’은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다. 이를 의미하는 말로 자동차 업계에서 흔히 쓰는 용어는 ‘비순정부품’이다.

자동차 부품은 순정부품과 비순정부품 두 가지로 나뉜다 할 수 있다. 이는 생산 주체를 기준으로 분류한 개념이다. 완성차 회사가 자동차 생산 때 쓰는 특정 업체의 제품이 순정부품이고, 동일한 성능과 규격을 갖춘 기타 부품은 비순정부품이라 불린다. 즉, 완성차 업체에 납품을 하지 않는 제조사가 생산하는 모든 부품은 비순정부품으로 분류된다.

[사진 = 현대자동차 제공/연합뉴스]
[사진 = 현대자동차 제공/연합뉴스]

순정부품이냐 비순정부품이냐가 제품의 성능에 의해 갈리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순정부품이 비순정부품보다 성능이 우수하다고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비순정부품이 순정부품보다 성능이 더 우수한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카센터 사장님 중엔 굳이 순정부품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안내하는 이들이 있는데, 실제로도 그게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소비자들의 인식이다. 왠지 찜찜하다는 이유로 ‘비품’을 기피하는 심리가 작용해 비싼 값을 주고 순정부품을 사용하는 예가 많다는 얘기다. 더 심각한 문제는 ‘비품’의 정확한 의미를 몰라 무작정 순정부품을 선택하는 예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이런 소비자의 인식과 오해를 악용해 부당하게 순정부품 판매를 늘리려 한 정황이 포착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았다. 두 자동차 제조사는 단순히 소비자의 오해를 이용하는 수준을 넘어 허위 정보까지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제조사는 2012년 9월~2020년 6월 생산한 여러 차종의 취급설명서에 ‘순정부품을 써야 안전하고 최상의 성능을 유지할 수 있다’, ‘비순정부품은 차량 성능 저하와 고장을 유발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자사와 부품 공급계약을 맺지 않은 모든 부품회사들의 제품이 안전하지 않고 차량 성능을 떨어뜨린다는 근거 없는 정보를 담아 순정부품만 쓰도록 유도한 것이다.

공정위는 두 완성차 회사가 배포한 사용설명서 상의 일부 문구들이 거짓·과장 표시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비순정부품이 안전과 차량 성능 유지에 적절치 않다는 주장엔 아무런 근거가 없다. 현대차와 기아가 말하는 비순정부품 중에는 국내외 규격에 맞게 생산된 제품, 국토교통부가 지정한 인증기관에서 성능과 품질을 인증받은 부품도 다수 포함돼 있다.

현대차와 기아가 지칭하는 순정부품은 현대차 계열사인 현대모비스가 생산한 제품을 말한다. 현재 현대모비스 제품만이 두 회사의 자동차 생산 과정에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차와 기아는 계열사 제품 판매를 늘리기 위해 사용설명서를 통해 거짓·과장 행위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두 회사의 이 같은 행위로 인해 현대모비스는 매출에 큰 도움을 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여연대가 2019년 에어컨 필터와 전조등처럼 교체 빈도가 높은 6개 차량부품의 가격을 조사한 결과 순정부품의 가격은 비순정부품에 비해 최대 5배나 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이번 공정위의 조치는 그 같은 부당 행위에 대한 제재였던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제재 수준이 경고에 그쳤다는 게 그 이유다. 일각에선 봐주기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공정위가 이번에 내린 ‘경고’ 조치는 법 위반 정도가 경미하거나, 위반행위를 당사자가 스스로 시정해 제재의 실익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에 내려지는 것이다. 근거는 ‘공정위 회의 운영 및 사건절차 등에 관한 규칙’이다.

그러나 현대차의 경우 지금도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일부 차종의 사용설명서에 문제의 조항들을 변경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스스로 시정조치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경고 조치가 내려졌음을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이번에 공정위가 현대차 등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렸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공정위는 대상 업체를 수사기관에 고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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