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지난 21일 있었던 대통령선거 TV토론회를 계기로 기축통화와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Special Drawing Rights)이 갑자기 세간의 주요 키워드가 됐다. 토론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한국이 곧 기축통화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 게 발단이었다.

이 발언은 이 후보가 국가채무와 재정건전성 등을 주제로 다른 후보들과 논쟁하는 과정에서 돌출됐다. 그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기축통화국과 비(非)기축통화국의 차이를 아느냐”고 묻자 “우리도 기축통화국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우리의 원화가 조만간 미국 달러화처럼 기축통화가 될 것이란 얘기였다.

이 후보는 앞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문답하는 과정에서도 언론 보도를 거론하며 비슷한 내용의 발언을 했다. 그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의 적정비율에 대한 윤 후보의 질문에 답하면서 “한 50~60%를 넘어가면 비기축통화국은 좀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나온 것이 기축통화국 편입 가능성 발언이었다. 맥락상 이재명 후보의 이 발언은 국가채무가 너무 많아지면 재정건전성이 악화된다는 비판을 방어하려는 취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 달러화. [사진 = 연합뉴스]
미국 달러화. [사진 = 연합뉴스]

뜬금없이 돌출된 이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출신으로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앞장서 비판해온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은 이 후보의 기축통화 발언을 “똥볼”에 비유하며 비꼬았다. 관련 지식이 없이 아는 체를 하다가 어이없는 실수를 했다는 뜻이었다.

비판이 쏟아지자 이 후보측 선거대책위원회 공보단에서도 해명에 나섰다. 이 후보의 발언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지난 13일자 보도자료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전경련이 배포한 보도자료의 제목은 ‘원화의 기축통화 편입 추진 검토 필요’였다. 원화의 기축통화 편입이 머지않아 실현될 가능성을 떠올리게 할 만한 문구였다.

하지만 본문 내용을 살펴보면 그 취지가 따로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자료는 IMF의 SDR 통화바스켓에 원화가 포함될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적 위상으로 볼 때 추진해볼 만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보도자료는 우리 원화가 SDR 통화바스켓 편입 1순위 화폐라는 블룸버그 통신의 2015년 11월 보도도 함께 인용했다. 자료에 따르면 통신이 보도한 원화 다음의 2, 3순위 화폐는 싱가포르 달러와 캐나다 달러였다.

전경련 보도자료에는 기축통화 개념에 대해 혼선을 안겨줄 여지를 담은 내용도 들어 있었다. 기축통화의 개념에 대해 “국가간 무역·자본거래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통화로, 달러·유로·엔·파운드·위안화를 지칭(IMF 특별인출권 통화바스켓 기준)”이란 대목이 그것이다. 전경련 자료에는 또 “원화가 SDR 통화바스켓에 편입되어 기축통화로 인정받을 경우”란 표현도 나온다. 이는 해당 보도자료가 ‘기축통화=IMF SDR 편입화폐’라는 전제에서 작성됐음을 말해준다.

이는 보도자료 작성자가 위안화를 기축통화 범주에 넣고 있음을 함께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보는 시각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보도자료 내용을 둘러싸고 혼선이 빚어지자 전경련은 토론회 다음날 설명자료를 내고 ‘재정적자와 무역수지 악화 등으로 인한 경제위기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원화의 SDR 통화바스켓 편입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는 요지를 밝혔다. 설명자료는 또 “국제적으로 안전자산으로 인식되어야만 국제 지급·결제 기능을 갖춘 명실상부한 기축통화가 될 수 있으므로 경제 펀더멘털 유지는 매우 중요한 사안임을 밝힌다”고 덧붙였다. 논란이 일자 원화가 SDR 통화바스켓에 편입된다 해서 명실상부한 기축통화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종합하자면, 이번 일은 기축통화의 개념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에서 비롯된 해프닝이라 할 수 있다. 전경련 보도자료가 기축통화의 개념을 지나치게 넓게 잡아 논란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

사실 기축통화의 개념을 정의할 뚜렷한 기준은 어디에도 없다. 기준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기관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 달러화를 유일한 기축통화로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유로화와 영국 파운드화, 일본 엔화를 그 범주에 넣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통상적으로 기축통화라 함은 이상의 네 개 화폐를 지칭한다.

한국은행은 기축통화의 기준으로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 셋은 국제무역 결제, 환율 평가지표, 대외 준비자산 보유의 수단 등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 여부다. 하지만 원화는 이 요건 중 어느 것도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원화. [사진 = 연합뉴스]
한국 원화. [사진 = 연합뉴스]

세 가지 기능 중에서도 우리가 현실적으로 기축통화인지 여부를 실감할 수 있는 기준은 글로벌 결제수단으로서의 기능이다. 당장 우리가 외국에 나가 어디에서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화폐라면 명실상부한 기축통화라 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미국 달러화를 유일한 기축통화로 보는 견해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2019년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제결제은행(BIS) 주관 전 세계 외환 및 장외파생상품 시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원화가 국제결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매도·매입 총합 200%)은 2.0%에 불과하다. 1위는 미 달러화로 그 비중은 88.3%였다. 유로화는 32.3%, 엔화는 16.8% 등을 차지했다.

기축통화 논란과 함께 화제가 된 IMF의 SDR은 그 자체로는 화폐라 할 수 없는 개념이다. 전경련이 보도자료에 밝혔듯이 일종의 화폐교환권이라 할 수 있다. SDR은 IMF 회원국 중 어떤 국가가 외환위기에 처했을 때 IMF로부터 담보 없이 원하는 종류의 화폐를 액면가 비율에 맞춰 지원받을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1단위의 SDR을 제출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미 달러화나 유로화, 파운드화, 엔화, 위안화 중 원하는 화폐를 교환받을 수 있다.

특정 화폐가 이 때의 교환 대상에 들기 위해서는 SDR 통화바스켓에 편입돼 있어야 한다. 현재 IMF의 SDR 통화바스켓에 편입돼 있는 화폐는 위에서 거론한 5개 화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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