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란 말이 요즘 들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Agflation’은 ‘Agriculture(농업)’와 ‘Iflation’(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서 농산물 가격 급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인플레이션 현상을 의미한다.

애그플레이션을 실감케 하는 일들은 요즘 우리 일상에서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제과점에서 빵을 사거나 식당에서 면류 음식을 먹을 때가 대표적인 경우다. 제과점 방문 땐 비슷한 가격이면 빵의 크기나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볼 수 있고, 칼국수나 냉면, 자장면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가면 가격이 크게 올라 있음을 느끼게 된다. 곡물 중에서도 대표 주자라 할 밀의 국제거래 가격이 많이 올라간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밀뿐이 아니다. 옥수수 가격 상승세도 만만치 않다. 옥수수 가격 상승세는 동물 사육비 등을 높이고 이는 육류가격 상승세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해바라기씨가 품귀 현상을 빚는 바람에 해바라기씨유와 대체재 관계에 있는 콩기름 등 각종 식용유 가격도 덩달아 뛰어오르고 있다. 이는 또 우리가 즐겨먹는 치킨이나 제반 튀김류 음식가격을 자극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우크라이나의 광활한 밀 재배농장.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의 광활한 밀 재배농장.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앞서 언급한 곡물류의 거래 가격을 들썩이게 하는 배경에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초래된 우크라이나 사태가 자리하고 있다. 국제 곡물가는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가 가져다준 공급망 차질로 꿈틀거리던 터였다. 그런 판국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지자 곡물 가격은 더욱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곡물의 주 수출국이라는 점이 직접적인 이유다.

밀 수출에 있어서 러시아는 1위를 달리는 나라다.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에는 못 미치지만 ‘빵공장’이라 불릴 정도로 전세계 밀 수요의 많은 부분을 감당해온 나라다. 우크라이나는 해바라기씨 수출 부문에서는 1위를 달리고 있다. 해바라기씨 가격이 솟구치면서 소피아 로렌 주연 영화 ‘해바라기’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광활한 해바라기밭이 우크라이나에 있다는 사실도 최근 들어 새롭게 상기되고 있다.

곡물 가격 상승세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예상 외로 길어지고 있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곡물 가격이 장기간 고공 행진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을 뒷받침하는 정황은 여럿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의 농부들 다수가 올해 봄에 파종 시기를 놓쳤다는 점이다. 국제사회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면서 비료값이 상승한 점도 문제다. 비료값 상승에 따라 옥수수 등의 주요 곡물이 더욱 귀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농업단체들은 올 들어 우크라이나 농민들이 수확할 옥수수의 양이 전년보다 40%가량 줄어들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국 농부들이 비료값 상승 탓에 옥수수 재배를 외면한 채 비용이 덜 드는 콩 생산에 주력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러시아가 최근 우크라이나의 곡물창고를 무차별 공격하면서 곡물의 희소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곡물류 전반으로 보면 우크라이나는 세계 4위의 수출국으로 꼽힌다. 이 점을 의식한 듯 러시아는 최근 들어 우크라이나 동부의 곡물창고에 무차별 폭격을 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 통신은 최근 폭격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곡물 저장시설 사진을 공개한 바 있다. 로이터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의 곡물 저장시설을 지속적으로 파괴한다는 정보가 미국의 관련 당국에 의해 확보됐다고 전했다.

통신에 따르면 미 당국자는 러시아의 이 같은 행위가 세계 식량안보를 위협하고 있으며, 특히 우크라이나산 밀에 크게 의존하는 중동이나 아프리카 국가들의 식량난을 가중시킬 것이라 지적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블룸버그 통신과 CNN 등 미국 언론 보도에 의하면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의 7월 인도분 옥수수 선물 가격은 부셸(약 25.4㎏)당 8.04달러를 기록했다. 해당 가격이 8달러를 돌파한 것은 2012년 9월 이후 처음이다. 당시의 옥수수 선물가격은 이상고온 현상으로 인해 부셸당 8.49달러까지 올라갔었다. 이 가격은 지금까지 역대 최고가로 남아 있다.

옥수수의 국제가격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벌어지기 전인 올해 초만 해도 부셸당 6달러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이는 지금의 옥수수 가격이 석달 간 30% 이상 올랐음을 말해준다. 옥수수 가격 상승이 가파르게 전개되자 언론에서는 ‘콘플레이션’(옥수수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이란 말까지 거론되고 있다.

지난달 수입 밀의 가격은 t당 400달러 선을 넘어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20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달 밀 수입가격은 t당 402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전달 대비 8.8%, 전년 동월 대비로는 41.4%,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초기인 2020년 3월에 비해서는 54.3%가 각각 오른 가격이다.

우리나라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로부터 사료용 밀을 주로 사들이고 있다. 식용 밀은 미국·캐나다·호주 등으로부터 수입한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밀의 국제가격이 상승하는 바람에 미국 등으로부터의 수입가격도 동반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밀의 수입 가격 상승은 국내 물가에 곧바로 전가됐다. 한국소비자원의 가격정보 종합포털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지역 칼국수 평균값은 8113원으로 상승했다. 1년 전 대비 상승률이 8.7%나 된다. 서울 지역 칼국수 평균값이 8000원선을 돌파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냉면과 자장면 가격 상승 현상도 두드러졌다. 서울 기준 냉면과 자장면의 지난달 가격은 각각 9962원, 5846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 대비 각각의 상승률은 9.7%와 9.4%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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