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유류세 인하폭이 여차직하면 50%까지 확대될 기반이 마련됐다. 휘발유·경유 등 국내 유류 소매판매 가격에 붙는 유류세가 절반으로 줄어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일각에선 고물가 타개를 위해 당분간 ‘유류세 제로’를 구현하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만 정치권의 선택은 유류세 50% 감면안이었다. 국회는 2일 2024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유류세 탄력세율 조정 한도를 현행 30%에서 50%로 확대하는 것이 가능해지도록 교통·에너지·환경세법과 개별소비세법 개정안을 각각 의결했다.

이로써 정부는 대통령령 손질을 통해 유류세를 50%의 범위 안에서 탄력적으로 조정해 운용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유류세 탄력세율 적용 범위의 결정은 국회 입법 사안이다. 하지만 법률상 허용된 범위 안에서 탄력세율을 실제로 얼마나 적용해 운용할지는 시행령에 의해 결정된다. 시행령은 정부가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언제든 손질할 수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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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번 결정으로 정부는 국회 동의 절차 없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보다 큰 범위 안에서 상황에 맞게 조절할 수단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법적 한도를 채워 적용중인 30%의 유류세 인하폭을 언제든 20%포인트까지 더 늘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부는 현재 30%의 유류세 인하에 교통세 조정이라는 별도의 수단까지 추가 동원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사실상 37%의 유류세 인하효과를 누리도록 조치하고 있다. 별도의 수단이란 그간 탄력세율을 플러스 적용해 더 많이 걷어오던 교통세를 법정세율에 맞춰 하향조정하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30%의 유류세 인하율을 적용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37% 감면 효과가 나타나게 했다. 유류세는 판매가와 상관없이 ‘리터당 얼마’ 하는 식으로 정해져 있다. 종량제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유류세는 교통세와 교육세, 주행세, 부가가치세 등으로 구성돼 있다.

탄력세율이란 법정 기본세율을 일정 범위 안에서 시행령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허용되는 세율이다. 정부가 국회 동의라는 번거로운 절차 없이 행정 효율성 제고를 위해 세율을 융통성 있게 조정해 운용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관련 제도가 도입됐다.

이번의 법률 개정에 따라 정부가 2024년 이전 어느 시점에 유류세 인하를 극대화할 경우 휘발유를 기준으로 한 세금의 추가 인하폭은 최대 148원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에 관련법 개정이 이뤄졌다고 해서 당장 유류세가 추가로 인하되는 것은 아니다. 상황을 보아가며 적절히 유류세 인하폭을 조절해 나간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다만, 이번 국회 결의 덕분에 정부로서는 유사시 유류세 조정폭을 더 키울 여지를 얻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제유가와 물가동향, 세율 인하가 정부 재정에 미치는 영향 등을 두루 고려해가며 유류세 추가 인하 여부를 검토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류세 인하 검토 조건과 관련된 이 같은 내용들은 개정안에 달린 부대의견에도 명시돼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표결 하루 전 관련 상임위 업무보고를 통해 필요한 경우 적절한 시점에 유류세 탄력세율을 적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물가와 정부 재정상황 등 제반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유류세 인하폭을 조절해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50%의 탄력세율을 적용하는 상황이 오지 않으면 제일 좋겠다”고 덧붙였다. 최근 들어 유가 하락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밝히며 한 발언이었다.

한편 세계적으로 고물가 현상이 지속되자 각국 정부는 물가부담 완화책을 쏟아내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여파로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이 줄어들면서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국들의 움직임이 특히 빨라지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사진 = EPA/연합뉴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사진 = EPA/연합뉴스]

대표적인 것이 독일의 ‘9유로 티켓’ 보급이다. 외신 보도들에 따르면 이 방안은 서민·중산층 부담을 덜어주면서 자가용 이용까지 줄이는 효과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모범적이란 평을 듣는다. 이 방안은 부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혜택을 부여한다는 논란과도 무관하다는 장점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유류세 인하가 부자들에게 더 큰 이익을 보장해준다는 논란에 휩싸여 있는 것과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독일 정부는 고물가 현상이 장기화하자 지난 6월부터 ‘9유로 티켓’을 발매하고 나섰다. 국영철도 회사 도이치반이 발행하는 9유로(약 1만2000원) 짜리의 이 티켓을 구입한 독일 국민은 한 달 동안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이 제도는 8월까지 3개월 시한으로 운용된다.

‘9유로 티켓’ 아이디어 도입 덕분인지 독일의 소비자물가는 두 달 연속 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독일의 소비자물가는 지난 5월 전년 동기 대비 7.9%의 상승률을 보였었다. 그러나 상승률은 ‘9유로 티켓’이 발매되기 시작한 6월 들어 7.6%로 반락했고, 7월 상승률은 그보다 0.1%포인트 더 떨어진 7.5%(속보치)를 기록했다.

기타 유럽국들도 북반구에 겨울철이 다가올 것에 대비해 물가 오름세를 억제하려는 필사의 노력을 펼치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오는 9월부터 연말까지 일부 국영철도의 왕복티켓을 무료로 발급키로 했고, 오스트리아는 자가용 운행을 줄일 목적으로 1년간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1095유로(약 146만원)짜리 티켓을 발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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