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확정됐다. 예산안 규모는 올해 본예산보다 5.2% 늘어난 639조원이다. 정부는 30일 국무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했다. 이 예산안은 다음달 2일 국회에 제출된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중인 감세정책을 고려하면 이번 예산안의 두드러진 특징은 ‘덜 걷고 덜 쓰겠다’는 의지가 뚜렷이 반영돼 있다는 점이다. 그 같은 의지는 우선 총지출 규모에서 확인된다. 내년 예산안 총지출(639조)의 올해 본예산 대비 증가율(5.2%)은 2017년의 3.7% 이후 가장 낮다. 문재인 정부 당시 작성된 2018~2022년 예산안의 연평균 증가율 8.7%보다 크게 낮아진 수준이다.

추가경정예산(추경)까지 포함해 계산하면 내년도 총지출 규모는 올해(679조5000억원)보다 오히려 40조5000억원 줄어들었다. 총지출 규모가 전년보다 줄어들기는 201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올해 2차 추경 기준 총지출 감소율은 6.0%다.

예산안 브리핑에 나선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 = 연합뉴스]
예산안 브리핑에 나선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 = 연합뉴스]

총지출 감소는 각종 감세에도 불구하고 총수입이 크게 늘어나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어서 더 두드러져 보인다. 내년도 총수입은 올해 본예산보다 13.1% 증가한 625조9000억원으로 잡혀 있다. 올해 초과세수를 반영해 이뤄진 2차 추경까지를 포함해 비교해도 총수입 증가율은 2.8%나 된다.

이처럼 총수입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총지출을 억제한 데서 새 정부의 건전재정 구현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는 ‘재정중독’, ‘재정만능’ 등의 비판을 들으면서 확장 재정 기조를 유지해온 이전 정부와 확실히 구별되는 부분이다.

정부는 재정 운용 기조를 ‘확장’에서 ‘건전’으로 전환함으로써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내년까지 50% 이내로,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올해 절반 수준인 2.6%선에 맞추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내년 관리재정수지 적자폭은 올해 예상치(110조8000억원)의 절반 수준인 58조2000억원으로 감축된다. 올해 1068조8000억원으로 추산되는 국가채무 규모는 내년에 1134조8000억원으로 소폭 늘어난다.

건전재정을 추구하면서도 써야 할 곳엔 쓴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꼭 써야 할 재원 마련을 위해 24조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이 단행된다. 이렇게 해서 마련된 재원은 서민과 사회적 약자, 청년, 민생을 살피는데 사용하게 된다.

재정 투입이 늘어나는 분야중 하나가 기초생활보장 지원이다. 정부는 내년 기준 중위소득 수준을 2015년 도입 이후 최대 폭인 5.47% 인상한 뒤 기초생활보장 지원을 2조4000억원 늘리기로 했다. 장애수당은 월 4만원에서 6만원으로, 기초연금은 30만8000원에서 32만2000원으로 각각 늘어난다. 반지하나 쪽방 거주자가 지상 민간 임대주택으로 이사할 경우 최대 5000만원을 융자지원하고 보증금 2억원 이하 사기 피해자에게는 피해액의 80%까지 금융지원을 해주기로 했다.

사회복지 분야에 대한 지출 증가율도 5.6%로 잡혔다. 소상공인 채무조정과 재기 지원 등에는 총 1조원을 투입하고, 장바구니 물가 부담을 덜기 위해 농축수산물 할인쿠폰 발행 규모를 기존의 배 이상인 1690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이밖에도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과 연구개발, 인프라 구축 등에 총 1조원을 투입한다. 홍수 대비를 위한 대심도 빗물 저류터널을 3곳에 신설하고 원자로 생태계 복원을 위해 소형모듈원자로 및 원전해체기술 개발도 지원하기로 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재정 투입도 새해 예산안에 반영됐다. 이에 따라 병장 월급(사회진출 지원금 포함)은 내년에 130만원(올해 82만원)으로 늘어난다. 0세 아동 양육가구에는 월 70만원의 부모급여를 지급한다.

지출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일부 분야에서는 재정 투입이 없어지거나 줄어들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코로나19에서 초래된 경제위기 극복 용도의 한시지원 조치다. 이 조치를 종료키로 하면서 지역사랑상품권은 중앙정부 예산에서 전액 삭감됐다. 그 결과 해당 사업은 자연스레 지방자치단체의 고유 업무로 되돌려졌다.

코로나19 관련 한시지출 종료와 재정분권 등의 여파로 중앙정부의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 지출이 18.0%,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는 10.2%, 문화·체육·관광 분야 재정 투입은 6.5% 각각 줄어든다.

솔선수범해 허리띠를 졸라맨다는 의미에서 서기관급 이상 공무원 보수는 동결되고, 장·차관급들은 보수의 10%를 반납하기로 했다.

재정운용 기조 변화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경제위기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는 재정이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해진다는 게 비판 포인트다. 코로나19 사태가 아직 완전히 종식되지 않았다는 점도 재정의 역할 축소를 비판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지금 같은 경제 위기 상황일수록 재정 안전판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건전재정 지지자들은 새 정부의 정책기조가 물가관리 차원에서도 긍정적 효과를 낼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예산 편성을 주도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복합 경제위기 상황에서 재정안전판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 뒤 “이에 따라 내년도 예산을 건전재정 기조로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방향 설정은 재정 의존도를 낮추면서 민간 주도로 경제 발전을 꾀해 나가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철학과도 연결된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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