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우리나라의 무역수지가 8월까지 5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그 바람에 무역수지 적자가 일상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나오게 됐다.

비관론이 확산될 것을 경계한 탓인지 한덕수 총리는 지난 달 초 페이스북을 통해 무역수지가 한 나라의 외화 수입과 지출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취지를 밝히고 나섰다. 당시까지의 발표만으로도 무역수지가 4개월째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음이 확인되자 민심 달래기 차원에서 내놓은 주장인 듯 보였다.

한 총리의 당시 주장을 초래한 것은 지난달 1일 나온 관세청의 ‘7월 수출입 현황’이었다. 해당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7월 중 수출 607억 달러, 수입 654억 달러를 기록했다. 당월 무역수지가 47억 달러 적자를 기록한 셈이다. 이후 수정된 자료상 나타난 적자폭은 당시 발표와 비슷한 48억 달러였다.

관세청 자료에 의하면 올해 우리나라의 월별 무역수지는 4월부터 적자 행진을 이어왔다. 4월 25억 달러 적자를 시작으로 5월 16억 달러, 6월 25억 달러, 7월 48억 달러, 8월(잠정) 95억 달러 적자 등을 기록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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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총리의 앞선 주장은 이 같은 자료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무역수지가 외화 수지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지 못하니 과도하게 불안감을 가질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려 했던 것 같다.

한 총리가 그 같은 주장을 펼친 근거는 한국은행이 발표한 ‘6월 국제수지’ 자료였다. 이 자료에 의하면 지난 6월의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56억1000만 달러 흑자를 보였다. 당월 상품수지도 전년 동월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35억9000만 달러 흑자로 집계됐다.

한 총리가 7월 무역수지 적자를 6월 경상수지에 빗대 설명한 것은 두 자료의 발표 시기 차이와 관련이 있다. 같은 달의 실적치임에도 불구하고 관세청이 집계하는 무역수지(수출입동향)와 한국은행이 산출하는 국제수지는 한 달가량의 시차를 두고 발표된다. 관세청 자료가 통관 기준으로 작성되는 만큼 한 달 정도 빨리 발표된다. 그에 따라 관세청의 7월 무역수지가 발표될 무렵 한국은행의 6월 국제수지가 발표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은행은 이달 7일에야 ‘7월 국제수지’를 발표했다. 골자는 7월 경상수지가 10억9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는 것이었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상품수지가 11억8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는 것이었다. 한은 발표 자료상 상품수지 적자가 나타나기는 2012년 4월 이후 10년 4개월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은 점은 10년여 만에 상품수지 적자가 실현됐다는 내용이다. 무역수지가 이미 수개월째 적자행진을 이어오고 있는데 ‘같은 개념’의 상품수지가 10여년 만에 처음 적자를 기록했다는 것이 얼른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특히 ‘무역수지=상품수지’라고 배워온 이들은 한은의 이번 발표 내용에 큰 혼란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하지만 거래 시스템이 다양화되면서 무역수지와 상품수지는 이제 사실상 별개의 개념으로 다뤄지고 있다. 우선 관세청이 발표하는 무역수지는 상품의 월별 수출입 금액을 통관 기준으로 집계한 결과치라는 특징을 갖는다. 이와 달리 한은이 집계하는 상품수지는 소유권 기준으로 작성되는 개념이다. 즉 거래하는 상품의 소유권이 국내 거주자와 해외 거주자 간에 이전될 때에 한해 거래 내역을 계상한다는 의미다.

이런 차이점으로 인해 한국은행은 매달 상품수지를 발표할 때 ‘국제수지 매뉴얼(BPM6)의 소유권 변동원칙에 따라 국내 및 해외에서 이뤄진 거주자와 비거주자 간 모든 수출입 거래를 계상한다’는 사실을 공지하고 있다.

이처럼 기준이 다른 까닭에 상품수지는 무역수지에는 반영되지 않는 중계무역 및 가공무역 내역까지를 모두 포괄하게 된다. 중계무역은 상품의 국내 반입 절차 없이 외국에서 외국으로 물품 이동이 이뤄지는 만큼 통관 기준의 무역수지에는 잡히지 않는다. 가공무역의 경우 국내 반입이 이뤄지더라도 외국인 간의 거래일 경우 내·외국인 간 소유권 이전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상품수지에서 배제된다.

그 결과 무역수지와 상품수지 집계치는 서로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일반적 평가에 따르자면 무역수지는 수입 규모를 과대 계상한다는 단점을 지닌다. 상품수지를 기반으로 하는 경상수지가 보다 정확히 외화 수지를 반영하는 개념이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한덕수 총리가 페이스북 글을 통해 강조하고자 한 것도 이 점이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무역수지가 갖는 의미를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통관 기준 자료로서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또한 무역수지 적자 추이를 추적하는 것 자체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무역수지와 상품수지 간에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는 점이 그 배경이다. 실제로 무역수지와 무관할 수 없는 상품수지는 보다 포괄적 개념인 경상수지의 주요 구성요소로 기능한다. 한 총리가 강조한 대로 경상수지는 외화 수지를 정확히 보여주는 현실적 지표라는 평을 듣는 개념이다.

한은 발표에 의하면 7월 경상수지는 수개월 째 이어져온 무역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10억9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석 달째 흑자 기조를 이어갔지만 그 규모는 작년 같은 달에 비해 66억2000만 달러나 감소했다. 전달(56억1000만 달러)에 비교해도 흑자폭은 크게 줄어들었다.

경상수지는 상품수지와 서비스수지, 본원소득수지 및 이전소득수지 등으로 구성된다. 7월의 경우 상품수지는 앞서 밝힌 대로 오랜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 같은 달 이전소득수지도 적자(3억4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서비스수지와 본원소득수지는 각각 3억4000만 달러, 22억7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항목별 수지 내역을 보더라도 상품수지 적자가 경상수지 흑자폭 감소를 주도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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