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올해 정부의 물가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고물가 현상이 예상보다 강하고 길게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어서이다. 정부는 최근 들어 오는 10월부터 물가 오름세가 약화될 것이란 취지를 심심찮게 밝혀왔다. 직접 표현은 아닐지라도 물가 정점론을 흘림으로써 기대인플레이션율을 낮추려는 정책의도가 엿보이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당국자들의 기대 섞인 긍정 발언에도 불구하고 고물가는 한동안 더 이어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 전망이다. 그렇다고 해서 물가 정점론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최근 몇 달 간의 흐름을 보면 실제로 다음 달 이후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표상으로는 유의미하게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물가 정점론이 전년 동월 대비 물가지수 상승률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9월과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월(6.3%)이나 8월(5.7%)보다 낮아질 순 있지만 물가 수준 자체가 내려가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비교 시점인 작년 9, 10월의 물가가 워낙 높았던 점을 고려하면 기저효과에 의해 지표상 수치만 개선될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뜻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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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상 수치도 크게 낮아질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지난 8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누계 상승률이 5.0%를 기록했다는 점, 올해 연간 물가 상승률(전년 대비)이 5%대를 찍을 것이란 전망 등을 두루 감안하면 월별 물가상승률 또한 당분간 5%대를 유지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정부의 올해 물가관리 목표(4.7%)가 달성될지도 의문스럽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우리나라의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2%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새로 제시했다. 종전 전망치는 4.8%였다.

OECD가 이번에 ‘2022년 한국경제 보고서’에 담은 한국의 올해 물가 전망치는 불과 3개월 만에 수정발표된 것이다. 이는 최근 몇 개월 동안의 물가 흐름이 심상치 않았음을 말해준다. OECD의 새 전망치는 정부는 물론 한국개발연구원(KDI)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이 각각 제시했던 수치인 4.0%, 4.2%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대신 한국은행의 전망치와 동일했다.

OECD와 한국은행의 전망이 맞아떨어진다면 올해의 연간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외환위기 상황이었던 1998년(7.5%)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게 된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1~7월 차례로 3.6%→3.7%→4.1%→4.8%→5.4%→6.0%→6.3%의 흐름을 보이며 그 폭을 키워왔다. 그러다가 8월에 들어선 다음에야 비로소 5.7%로 상승폭이 다소 축소되는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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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지수) 상승률은 8월까지도 줄곧 높아지는 흐름을 나타냈다. 8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전달보다 0.6%포인트 감소한 것과 달리 근원물가지수 상승률은 8월에도 전달보다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7월과 8월의 전년 동기 대비 근원물가지수 상승률은 각각 3.9%와 4.0%로 집계됐다. 이 같은 근원물가 흐름은 물가 정점론이 아직은 설득력을 지니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해준다고 할 수 있다.

OECD는 이번에 한국의 소비자물가가 내년에도 비교적 높게 유지될 것이란 전망을 함께 제시했다. 내년 상승률 전망치는 기존보다 0.1%포인트 올라간 3.9%였다. 그것도 국제유가가 지금 수준을 유지할 것이란 전제 하에 제시된 수치였다. OECD는 감염병 사태로 인한 공급난과 에너지 가격 급등, 우크라이나전쟁 등이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키운다고 분석했다.

OECD는 최근 치솟고 있는 원/달러 환율도 수입물가를 높여 한국 내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울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국내 소비자물가는 각종 악재로 인해 다방면에서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기상 여건 악화로 배추 등 채소 가격이 크게 오른 데다 라면값·과자값·우윳값 등도 줄줄이 올라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더해 그간 정부가 억눌러온 전기 및 가스료 등 에너지 요금도 줄줄이 인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 됐다. 한국전력과 가스공사 등의 경영난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만큼 악화된 것이 원인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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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정부는 라면과 과자 등 실생활에 민감한 영향을 미치는 주요 가공식품 가격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다. 가공업체들이 제품 가격을 함부로 올리지 못하도록 은근히 압력을 가하려는 의도가 밴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정부의 주문은 생산성 향상을 통해 가격 인상 요인을 최대한 배제해 달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물가심리를 다스리려는 의도도 내비쳤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민생물가 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채소류 가격 안정화 의지를 특히 강조했다. 그는 다음 달엔 가을철 채소류가 본격 출하되면서 공급 여건이 개선될 것임을 역설하면서 그때까지 수급관리를 위해 전방위적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추 부총리는 “최근 값이 올라간 배추는 정부물량을 완전 생육 전에 조기 출하하겠다”고 강조하면서 김치용 배추를 예정보다 빨리 수입하는 등 적극 대응에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정부는 다음 달 초에 들여오려던 배추 600t을 이달 하순에 앞당겨 수입하기로 했다.

추 부총리는 10월 이후엔 물가 여건이 개선될 것이란 기존의 입장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러면서도 “물가 불안 요인이 잠재돼 있어서 한시도 경계감을 늦출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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