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원/달러 환율이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자 외환위기 재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부쩍 커졌다. 우려와 맞물려 미국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서둘러 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들린다. 한·미 간 통화스와프 이야기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더욱 크게 부각됐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통화스와프 문제를 의제로 다뤄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이 정치권의 주된 요구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정작 통화스와프 체결의 우리 쪽 카운터파트인 한국은행은 비교적 차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서두른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고, 매달리듯 미국에 스와프를 달라고 하면 시장에 그릇된 신호만 내보낼 수 있다는 게 한은의 기본입장이다. 한은의 이런 스탠스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관련 질의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뚜렷이 드러났다.

통화스와프는 국가 간 약정에 의해 통화를 거래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한·미 간 통화스와프가 체결되면 두 나라는 원화와 달러화를 일정한 환율과 기간에 따라 맞교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달러화 부족에 시달릴 경우라면 원화를 주고 미국 측에서 그 값어치만큼의 달러화를 사올 수 있다. 사온 달러화는 만기가 도래했을 때 돌려주어야 한다. 대신 상응하는 원화를 되찾는다. 스와프 계약 당사자는 양국 중앙은행이다.

[사진 = EPA/연합뉴스]
[사진 = EPA/연합뉴스]

달러화 발권국인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면 상대국은 외환 부족 위기가 발생했을 때 대응할 여력을 키우게 된다. 외환 부족이 현실화되지 않더라도 환율 불안 시국에서 경제주체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통화스와프가 갖는 장점이다.

환율 안정은 미국과의 통화스와프가 우리에게 가져다줄 부수효과에 해당한다. 지금처럼 원/달러 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에서 한·미 통화스와프 계약이 성사되면 시장은 안정감을 되찾을 가능성이 커진다. 불안정성이 일부 완화된다는 점이 그 이유다.

문제는 국가 간 통화스와프가 일방이 원한다고 해서 아무 때나 조건 없이 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데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국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면서 이 점을 강조했다.

이 총재는 한·미 간에 통화스와프 계약이 추진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 나오자 “정보 교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고 답했다. 아직 통화스와프를 논의하지는 않고 있음을 에둘러 밝힌 셈이다.

이 총재는 그러면서 통화스와프에는 내부 기준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글로벌 달러 시장에서 유동성 부족 문제가 있을 때 그걸 논의하게 돼 있다”면서 “지난 두 차례 통화스와프 계약 당시에도 (미국이) 우리나라와만 한 게 아니라 9개 나라와 동시에 체결했다”고 답했다. 이어 연준이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이 총재의 말을 종합하면 현재 미국이 달러화 유동성에 대한 글로벌 시장 상황을 점검하고 있으며, 필요한 환경이 조성되면 조건에 맞게 당사국과 계약 추진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다시 말해 통화스와프가 아무 때나, 조건 따지지 않고 비(非)기축통화국이 원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 총재는 또 지금은 미국과의 통화스와프가 필요한 시점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통화스와프의 기본조건인 ‘달러 쇼티지(부족)’가 우리나라에서 발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 총재는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달러 부족이 “전혀” 일어나지 않고 있음을 강조했다. 다만, 이런 상황을 논의하면서 시장 상황에 대한 정보를 미국 중앙은행과 공유하고 있다는 취지를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통화스와프를 추진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날 것이라는 취지를 밝히기도 했다. 이 총재는 “전제조건이 맞을 때 얘기하는 것이 맞지, 조건이 맞지 않는데도 마치 우리나라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스와프를 달라고 하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저자세가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총재의 이 같은 발언은 다시 외환위기가 닥칠 만큼 우리의 펀더멘털이 취약하지 않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와 달리 외환보유고와 순(純)대외금융자산(대외금융자산-대외금융부채)이 안정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그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외환보유액은 8월 말 현재 4364억 달러, 순대외금융자산은 6월 말 기준 7441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과거 외환위기 때 우리나라는 외환보유고가 바닥나는 바람에 가혹한 규제를 감수하겠다고 굴욕적인 약속을 하면서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달러화를 공급받은 바 있다.

금융시장의 펀더멘털이 양호한 덕분에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 또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환위기 가능성을 논하는 것은 불필요한 호들갑일 수 있다는 게 한은의 상황인식인 것으로 분석된다.

한은은 또 한·미 간 통화스와프가 환율 안정에 기여하는 정도는 제한적일 것이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설사 환율 불안이 진행된다 할지라도 그것이 통화스와프 추진의 전제조건이 될 수는 없다는 게 한은의 기본입장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이 한은과 외환스와프를 오는 10월 중 체결하기로 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국민연금이 필요시 원화를 한국은행에 맞기고 그 가치 만큼의 달러화를 조달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스와프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국민연금은 달러화로 해외투자를 진행함으로써 원/달러 환율 상승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스와프 계약이 이뤄지면 국민연금은 해외투자를 할 때 필요한 달러화를 국내 외환시장에서 사들이지 않고 한은으로부터 공급받을 수 있다. 국민연금이 국내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주고 달러화를 사들이면 원/달러 환율이 그만큼 올라가는데, 이제 그 같은 부작용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전체 스와프 규모는 100억 달러 이내이고, 만기는 건별로 6개월 또는 1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은 한은과 외환스와프가 성사되면 외환 거래비용을 줄이면서 달러 자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 제한적이나마 원/달러 환율 안정 효과를 동시에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보면 국민연금과 한은 모두에게 유익한 윈윈 계약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이번 스와프를 환율 안정을 위해 추진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모든 투자는 기금수익 증대를 위해 설계될 뿐임을 강조하려는 입장 표명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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