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지방선거 직후 윤석열 대통령은 이른 바 ‘도어 스테핑’을 통해 “창문이 흔들리고 마당의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 못 느끼십니까”라는 말을 남겼었다. 정치 관련 질문이 나오자 정색하고 경제난 해소에 여념이 없음을 강조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 자체가 정치적 제스처로 보이긴 했지만 당시 경제상황에 대한 비유적 설명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로부터 4개월여가 지난 지금 우리의 경제상황은 그때보다 훨씬 악화됐다. 당시보다 나빠진 국내외 기관들의 경제전망이 상황 변화를 대변해준다.

일례로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달 들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2.9%에서 2.7%로 낮췄다. 세계경제의 성장 둔화는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에게 특히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마당에 내수마저 숨 가쁘게 올라가는 금리와 장기간의 고물가로 인해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기획재정부는 ‘경제동향 10월호’에서 경기둔화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둔화 우려’ 진단은 5개월째 이어졌다. 기재부의 이 같은 상황 인식은 장기간의 고물가와 수출 부진, 환율 급등에 의한 수입 증대, 그로 인한 경상수지 악화 등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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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그간 무역수지가 적자 행진을 거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상수지가 건재하다는 점을 앞세우며 경제심리를 다독여왔다. 무역수지 적자가 갖는 의미를 축소하며 지나치게 불안감을 지닐 필요가 없음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러나 믿었던 경상수지마저 지난 8월 적자로 돌아서자 정부도 내심 당황하는 기색을 나타내고 있다.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하고 싶었을 무역수지가 6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한 결과 경상수지마저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니 그럴 만도 한 일이다. 무역수지 6개월 연속 적자는 우리가 25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다.

이달 초 통계청이 내놓은 9월 고용동향도 긍정적인 내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저효과 덕분에 1년 전 대비 취업자 증가폭 자체는 70만7000명으로 집계돼 괜찮은 듯 보였지만 흐름은 부정적이다. 증가폭이 넉 달째 감소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늘어난 취업의 질이 좋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60세 이상 노인 취업자가 증가분의 63.8%나 된다는 것, 주당 근로시간 18시간 미만인 단기 근로자수(251만명)가 9월 기준으로 역대 최대라는 점 등이 문제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이 모두가 경기둔화 우려가 반영된 결과라 볼 수 있다. 고용 증가폭 감소나 단기 근로자 증가는 고용주들이 경기 침체 위기를 느낄 때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3일 밤엔 해외에서 우울한 소식 하나가 날아들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9월 들어서도 전혀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미 노동부가 발표한 지난달 CPI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8.2%였다. 8월 상승률(8.3%)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무엇보다 시장 예상치보다 높다는 점에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CPI 상승률은 더 실망적이었다. 미국의 9월 근원물가는 6.6% 상승해 전달(6.3%)보다 상승폭을 키웠다. 미국 물가가 아직 고점을 지나지 않았을 가능성을 말해주는 내용이다. 이 같은 결과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초긴축을 정당화해주며 기준금리 상승압력을 높이는 작용을 할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은행은 연준이 주도하는 세계적 긴축 흐름에 맞춰 기준금리를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한은은 은연중 목표점을 3.5%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변동성에 영향을 미칠 대내외 요인이 산재해 있어서 그 또한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다수 전문가는 지금보다 기준금리가 최소 0.50%포인트 더 올라가고, 그런 상태가 장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야말로 고통스러운 행로가 우리 앞에 길게 펼쳐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난을 통해 누차 강조했듯이 이럴 때 우리가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정부를 비롯해 모든 경제주체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게 상책이다. 달리 왕도가 있을 수 없다. 특히 정부는 재정지출을 최소화함으로써 물가를 조금이라도 자극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IMF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각국 정부에 감세와 재정지출 자제를 촉구했다. 자칫 물가를 밀어올리고 이럴 때일수록 튼실해야 할 재정상황을 보다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 그 같은 촉구의 이유일 것이다. IMF는 한 발 더 나아가 저소득층에 대한 보조금 지금 등 약자복지 예산까지도 제한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IMF의 권고는 세계 경제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지를 입증해주었다. 동시에 각국 경제주체들이 힘 모아 허리띠를 졸라매며 고통을 견뎌야만 위기 탈출이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정치권은 이런 위기 상황에 대해 오불관언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위기 극복을 선도해야 할 집단이건만 오히려 정파적 이익만 추구하느라 포퓰리즘 망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양곡관리법 개정이나 여야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기초연금 40만원 지급방안 등이 대표적 사례들이다.

민주당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쌀값이 5% 넘게 떨어질 경우 초과 생산분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쌀 소비는 갈수록 줄어드는데 재정을 풀어 쌀 생산을 오히려 독려하겠다는 희한한 발상이 그 기저에 깔려 있다. 우리가 보건대, 추진 이유는 정치적 지지세 유지 및 확보다. 농민들의 고통을 외면하자는 게 아니다. 재정을 쓰더라도 국가 장래를 생각해서 벼농사를 현실적 필요에 맞게 밀농사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일 등에 투입하는 게 맞을 것이다.

기초연금을 40만원으로 올리는 방법과 대상을 두고는 여야가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포퓰리즘에 기반을 두고 있기로 치면 도긴개긴이다. 기초연금은 반드시 국민연금 개혁 등과 연계해 조정해야 할 대상이다. 자칫 국민연금 탈퇴 욕구를 자극할 수 있어서이다. 복지 혜택은 하방 경직성이 강해 다시 내리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정부·여당이 대선 공약이라는 이유로 병장 월급 200만원 지급 방안을 고집스레 추진하려 하는 것도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징집에 의해 군 생활을 하는 병사들에게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주려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옳은 일이다. 문제는 속도다. 과속은 으레 각종 부작용을 수반한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더구나 지금처럼, 창문이 흔들리고 마당의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수준을 넘어 건물이 무너질지 모를 상황에서는 정치권이 솔선수범해 함께 태풍에 맞서자고 호소하는 게 상식적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지금 같은 위기상황에서도 가재도구를 내다 팔아가며 지지자들에게 돈 뿌릴 궁리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을 각성시킬 내부의 양심적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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