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세계는 지금 반도체 전쟁중

②-1 주요국 반도체 산업 동향: 대만

②-2 주요국 반도체 산업 동향: 미국

②-3 주요국 반도체 산업 동향: 일본

②-4 주요국 반도체 산업 동향: 중국

③ 여전히 불투명한 한국의 미래 전략

 

[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2021년 4월 12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은 세계 굴지의 반도체 및 IT기업 등 관계자들과 화상회의를 진행했다. 회의에 초청(호출?)된 기업 중엔 삼성전자도 포함돼 있었다. 삼성전자의 최대 라이벌인 대만의 TSMC, 미국의 대표적 반도체 기업 인텔, 자동차 업체 포드, 온라인 쇼핑공룡 아마존 등과 함께였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장(NEC)이 주재한 당시 회의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도 잠시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 웨이퍼를 집어든 채 발언했던 모습은 세계인들에게 열 마디 말보다 강한 메시지를 남겼다. 그의 제스처는 미국 주도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역사적 신호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웨이퍼를 들어 보인 채 칩과 웨이퍼·배터리 등을 거론하며 “이 모든 것이 인프라”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후 유독 반도체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가 반도체에 남다른 식견을 가져서라기보다 시대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2021년 1월 취임한 직후부터 미국의 핵심 산업 복원과 안정성 강화를 기치로 내걸고 관련 법령과 행정명령을 손질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배터리·핵심광물·의약품과 함께 지목한 4대 주요품목 중 하나가 반도체였다. 반도체는 주요품목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삼성전자 평택공장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삼성전자 평택공장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반도체 산업 지원 및 육성을 위한 구체적 행동은 지난해 8월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법 등으로 불리는 ‘CHIPs for America Act’에 서명함으로써 보다 구체화됐다. 미국 반도체 산업의 육성·발전을 위해 대규모 지원을 실시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워싱턴무역관 보고서 ‘미 반도체 소자 시장동향’이 전한 바에 따르면 구체적 지원 내용은 △미국내 반도체 제조 및 연구개발을 위한 시설 건설과 현대화 △반도체 관련 연구개발과 인력 교육을 위해 상무부 소속 민관합동 기구 설치 △정부와 산업계·학계 협업 강화 △반도체 산업 인력난 해소를 위한 인재 양성 △반도체 공급망 지원과 안전한 통신 기술 개발을 위한 부처 간 협력 강화 등이다. 이를 위해 2022회계연도부터 5년간 542억 달러(약 67조원)가 지원된다. 연관 투자를 합치면 그 규모는 몇 배, 몇 십 배로 커진다.

미국이 이처럼 반도체에 관심을 쏟게 된 계기는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야기된 세계적 공급망 혼란 사태였다. 공급망 혼란은 자동차는 물론 가정용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반도체 부족사태는 완성차 업체는 물론 센서로 작동하는 반려동물 샤워기 같은 소소한 물품의 생산까지 차질을 빚게 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2021년 봄 차량 주문이 밀려드는 와중에 울산과 아산공장의 생산라인을 일시 중단하는 소동을 겪었다. 세계적 반도체 공급대란이 초래한 어이없는 사건이었다.

이 일로 자동차업계에서는 ‘마이너스 옵션’이라는 희대의 아이디어까지 등장했다. 고객이 자동차에서 특정 전장 장치를 생략하기로 약속하면 공급업체가 판매 가격을 할인해주고 출고 시점을 앞당겨주는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마이너스 옵션’이다. 반도체 품귀가 심화되자 미국 상무부 장관이 직접 나서서 세계 최대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TSMC에 미국 자동차 제조기업에 반도체를 우선 공급할 것을 압박하는 일도 벌어졌다.

코로나19로 비대면이 확산되면서 IT 관련 제품들의 수요가 늘어난 것이 촉매제가 됐지만 이런 현상은 시대 변화의 결과라 할 수 있었다. 각종 가전제품은 물론 전기자동차,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관련 산업이 활성화되고 데이터센터 구축이 활발해지면서 반도체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미국 정부가 세계적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의 목표는 뚜렷해 보인다. 반도체 생산과 최종 소비까지의 전 과정을 하나의 가치사슬로 묶되 미국이 그 중심에 서겠다는 것이다. 일차적 목표는 대표적 반도체 생산 기업들의 자국 투자를 유도해 미국을 핵심 생산기지로 만드는 데 두었다. 이를 통해 글로벌 공급망에서 미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려는 게 기본목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미국내 투자를 통해 현지 생산을 늘리면 우리나라가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바이든의 반도체 생산기지화 구상이 실현되면 한국 등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대신 미국의 일자리가 늘게 된다.

[사진 = EPA/연합뉴스]
반도체 웨이퍼를 집어든 채 발언하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 = EPA/연합뉴스]

미국의 구상은 반도체 수요공급의 개략적 현황을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기관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아시아개발은행(ADB) 자료를 인용한 워싱턴무역관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별 반도체 수요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5%다.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가 55%, 유럽은 10%의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이처럼 미국은 세계 반도체 수요의 3분의 1 이상을 점하고 있지만, 전세계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 정도에 불과하다. 중국을 포함하는 동아시아가 무려 70%(유럽은 10%)를 생산하고 있는 데 따른 결과다. 이상을 종합하면 미국은 반도체 수요·공급에서 심각한 미스매치를 겪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공급 부족을 메우기 위해 현재 취하고 있는 수단이 삼성전자나 TSMC 등으로부터의 반도체 수입이다.

미국은 반도체 연구개발과 설계, 장비 분야 등에서 최강자의 지위를 누리고 있지만 이처럼 제품 생산은 대만이나 한국 등에 아웃소싱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시스템 반도체의 예를 들면 미국 팹리스들이 제품을 설계해주면 TSMC 같은 해외 파운드리가 제품을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것이 대체적 구도였다. 메모리 반도체는 종합반도체기업인 삼성전자가 주로 공급해왔다. 그러다 보니 1990년 전세계에서 40%에 달했던 미국의 반도체 생산 능력은 절반 선으로 뚝 떨어졌다.

미국 의회조사국 자료는 더욱 비관적이다. 해당 자료에 의하면 2020년 미국의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12%에 불과하다. 구글이나 애플, 아마존 등 미국의 주요 기술회사들은 칩 생산의 90%를 대만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향후엔 공급 부족 문제를 자국내 공급망 확충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이 바이든 행정부의 의도이다. 지난해 세계 반도체 글로벌 판매량이 5700억 달러에 이른 것으로 추산되고 있고, 1990년부터 2020년까지 반도체 시장이 연평균 7.5%의 성장률을 기록한 것을 고려하면 미국의 공급망 주도 전략은 필연적이라 여겨진다.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움직임의 또 다른 한 축은 중국에 대한 견제다. 중국은 미국에 버금가는 반도체 수요국이지만 관련 기술 개발이나 생산능력에서 미국이나 한국·대만·일본 등에 뒤져 있다. 오늘날 세계 반도체 산업은 소프트웨어는 미국, 디자인은 미국과 유럽, 장비는 미국·유럽·일본, 반도체 생산은 한국(메모리)·대만(비메모리)이 각각 장악한 형국이다. 중국이 설 자리가 별로 없는 상황이다.

위기를 느낀 중국은 최근 들어 반도체 산업 육성·발전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후발 주자이다 보니 반도체 강국들의 기술 및 노하우를 차용하는데 치중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때 미국이 중국에 대해 철퇴를 내리친 것이다.

미국의 노골적 중국 견제는 반도체 산업 육성 이슈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말해준다. 최대 경쟁국인 중국이 현대 사회에서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 기술 개발에서 뒤처지게 함으로써 유일 패권국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겠다는 속셈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앞서 언급한 미국의 반도체법은 미국의 그런 속내를 대변해주었다. 해당 법엔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기업이 10년 동안 중국에 일정 기술 수준 이상의 장비 등을 이용해 설비투자하는 것을 금하는 가드레일 조항이 들어가 있다. 중국에 대한 기술 이전을 막으려는 게 직접적 목적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 10월 자국 기업이 중국 반도체 기업에 반도체 칩과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시키는 조치를 발표했다. 이로써 중국에 진출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 기업들도 타격을 받게 됐다. 한·미 간 협의를 통해 이들 기업에 대해서는 수출통제를 1년 동안 한시 유예하기로 했지만, 매번 기한 연장이 가능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상무부의 조치는 두 갈래다. 첫째는 고성능의 특정 반도체를 중국에 수출할 경우 허가를 받도록 한 것이었다. 이 조치의 실행을 위해 상무부는 28개 기업이 포함된 수출통제명단(entity list)을 만들었다. 이 조치에는 미국 외 국가에서 생산된 반도체일지라도 미국 기술이나 장비가 사용된 경우 수출 통제를 가하는 내용도 들어가 있다. 두 번째 갈래는 18nm(나노미터) 이하의 D램과 128단 이상의 낸드플래시, 14nm 이하의 로직칩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제한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에도 미국의 대중 압박은 집요하게 이어졌다. 올해 초 미 상무부는 수출통제조치 대상에 마카오를 새로 추가했다. 중국과 홍콩으로 국한돼 있던 통제대상의 범위를 넓힌 것이다. 중국이 마카오를 우회통로로 활용할 가능성까지 철저히 차단하겠다는 의도의 표현이었다.

미국은 반도체 산업에서 나름의 특장점들을 지닌 한국과 대만·일본을 상대로 ‘칩4 동맹’을 결성하려 하고 있다. 여기에 담긴 목적 중 하나도 중국 견제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의도대로 일이 진척된다면 중국은 첨단공정이 배제된 가운데 구공정에 의한 반도체 생산만을 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배제와 ‘칩4 동맹’의 결성 및 공고화를 완성함으로써 미국이 달성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는 명약관화하다. 그 목적은 말할 것도 없이 미국의 반도체 패권 확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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