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이번 주 국내외 증시 분위기를 결정할 핵심 요소는 은행권 사태의 전개 추이다. 대체적 관측은 금융시스템 전반이 붕괴되는 참사는 없을 것이라는데 모아져 있다.

하지만 은행권 사태의 파장은 미국·유럽의 은행들에까지 차례차례 번져가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에서 시작된 사태의 불씨는 퍼스트 리퍼블릭, 시그니처, 크레디트스위스(CS), UBS를 넘어 세계 굴지의 도이체방크에까지 날아들었다. 금융 불안 사태가 미국과 유럽 대륙을 넘나들며 파장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도이체방크는 독일 최대 은행으로서 자산 규모가 1조3370억 유로(약 1871조원)에 이르는 초대형 금융사다. 사태의 발원인 SVB 등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58개국에 8만5000여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는 점을 보더라도 이 은행이 흔들릴 경우 금융 차원 이상의 파장도 상당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시장 참가자들이 우려하는 점은 도이체방크의 부도위험 표시자인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의 급상승과 높은 AT1채권 비중이다. 코코본드로 불리는 AT1 채권은 신종자본증권으로서 주식·채권의 성격을 동시에 갖춘 금융상품이다. 문제는 앞서 스위스의 UBS가 자국의 CS를 인수하면서 AT1 채권을 모두 상각처리한 일이었다. 이 일로 다른 은행들이 지니고 있는 AT1 채권도 한 순간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졌다.

일단 독일 정부와 유럽중앙은행(ECB)은 도이체방크 위기설을 부인하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도이체방크의 미래를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공언했고,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필요시 유동성을 제공하겠다고 천명했다. JP모건 같은 월가의 메이저 은행들도 도이체방크의 수익성이 양호하다는 점을 거론하며 위기설을 일축했다.

금융 불안을 직접 촉발시킨 SVB 뱅크런이 말해주듯 중요한 것은 심리적 불안감의 확산 여부다. 사태의 여진이 길게 이어지면 은행들이 대출 요구에 소극적으로 응하게 되고, 결국 기업과 가계가 자금 조달에 애를 먹을 수 있다. 당장 우려되는 것은 장기간 저비용으로 손쉽게 자금을 조달해온 기업들이 갑작스러운 금융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다.

이는 곧 경기 둔화 또는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0.1%포인트 낮춰 0.4%로 다시 제시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호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연준이 금융 불안의 여진을 감안해 성장률 전망치를 내렸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중소형 은행들이 대출 조건을 강화하면 미국의 내수 경기가 둔화될 것이라 전망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도이체방크 본사. [사진 = AP/연합뉴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도이체방크 본사. [사진 = AP/연합뉴스]

은행권 부실은 유동성 위기를 불러와 기업들의 부실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지금의 금융 불안 사태는 그 도화선이 무엇이었든 유동성 위기라는 공통의 악재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같은 환경 탓에 일각에서는 연준이 연내에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지난 주 연준이 기준금리를 최소한으로 인상하자 긴축 정책이 조기에 종료될 것이란 기대가 형성됐다. 제롬 파월 의장이 연내 기준금리 인하가 없음을 시사했지만 그 기대는 금융 불안 기류를 업은 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금융 불안이 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 연준이 스탠스를 바꿀 것이란 전망은 금리 선물시장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그 같은 기류를 보여준 것이 최근의 채권 금리 움직임이다. 최근 미국의 국채 금리는 장·단기를 막론하고 모두 기준금리를 크게 밑도는 수준인 3%대에서 등락하고 있다. 채권 시장이 이미 연준의 기준금리 조기 인하를 전제로 움직이고 있음을 말해주는 현상들이다. 달리 표현하면 시장이 연준의 연내 금리 인하에 베팅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흐름은 증시에 복합적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증시 차원에서 보자면 미국 등의 경기 침체 가능성은 그 자체로 악재이지만 연준의 조기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은 단기적으로 호재가 될 수 있어서이다. 보다 뚜렷해진 것은 이래저래 증시의 불확실성이 더 커지게 됐다는 사실이다.

이번 주 중 주가지수에 영향을 미칠 기타 변수는 특별히 거론할 게 없는 편이다. 그나마 눈에 띄는 변수가 될 가능성을 포함하는 이벤트는 연준 이사들의 공개 발언들이다. 발언에 나서는 이들은 27~28일(이하 현지시간) 차례로 상·하원 청문회에 출석하는 마이클 바 연준 부의장과 30일 연설대에 서는 수전 콜린스 보스턴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 토머스 바킨 리치먼드 연은 총재 등이다.

한편 27일 코스피는 전장보다 8.98포인트(0.37%) 오른 2423.94로 개장한 뒤 오르내림을 반복하다 전장 대비 5.74포인트(0.24%) 하락한 2409.22에 거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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