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산을 넘어가니 또 산이 나왔다. 미국 중앙은행의 기나긴 긴축에 내성을 키우며 버텨온 투자자들 앞에 경기 침체의 그림자라는 새로운 악재가 나타났다. 이 악재는 아직도 증시에 온전히 반영되지 않은 것이어서 언제든 시장을 출렁이게 할 요인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글로벌 경기 전망을 어둡게 하는 사안 중 하나가 최근 새롭게 불거진 미국의 신용경색 가능성이다. 실리콘밸리뱅크(SVB) 사태의 파장이 좀체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점이 원인이다. 미국 은행들은 대상을 바꿔가며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뱅크런 소동에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은행들이 조심성을 키우면서 등장한 것이 신용경색 가능성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논란이 부각되면서 이 사안이 증시는 물론 세계경제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등장했다. 일차적 우려는 디폴트 현실화가 미국 내 고용과 소비 등에 악영향을 미쳐 그렇지 않아도 가능성을 키워온 경기 침체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데 모아져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사진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사진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미 행정부는 의회가 부채한도를 늘려주지 않을 경우 다음 달 초에 ‘X-데이’ 또는 ‘X-데이트’가 도래할 수 있다며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X-데이’ 등은 미국 연방정부의 달러가 고갈되는 시점을 의미한다. 정부의 위기의식 강조는 의회와 벌이고 있는 부채한도 협상을 자신들의 뜻대로 마무리지으려는 속내와 연관돼 있다. 미국 최대은행인 JP모건 체이스가 연방정부 디폴트 가능성을 전제로 ‘전시 상황실(War Room)’을 가동한 것도 위기의식 고조에 일조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정부와 의회 간 부채한도 협상 줄다리기 과정에 JP모건이 가세함에 따라 시장에서의 우려는 한층 짙어졌다. 일각에선 2011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디폴트 가능성 부각 속에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했던 전례를 소환하며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당시 사태가 금융위기 발발 이후 3년 만에 나타났음을 들어 지금 상황이 그때와 비슷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디폴트 논란이 감염병 사태 발발 이후 약 3년 만에 나타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역사에서 78차례나 정부-의회 간 부채한도 협상 줄다리기가 벌어졌지만 디폴트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팽팽해지는 정부-의회 간 대립은 불안감을 키우며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경기 전망에 대한 우려는 국내에서도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수출이 장기간 부진의 늪에 빠져든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수출 부진을 보충해주어야 할 내수도 부진한 양상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지난 12일(이하 현지시간) 공개한 그린북 5월호를 통해 “수출과 설비투자 부진 등 제조업 중심의 경기 둔화가 지속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미국 정부 부채한도 상향조정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케빈 매카시 하원 의장과 조 바이든 대통령. [사진 = AP/연합뉴스]
미국 정부 부채한도 상향조정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케빈 매카시 하원 의장과 조 바이든 대통령. [사진 = AP/연합뉴스]

해묵은 악재인 고물가 현상도 고질적 문제로 남아 있다. 지난 12일 미시간대학은 미국의 1년 및 5년 기대인플레이션율 집계치를 각각 4.5%, 3.2%로 발표했다. 이로써 고물가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번 고물가가 끈끈한 물가 치고도 무척이나 점성이 강한 상태라는 것을 입중해준 결과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가 이어진다면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고금리 상태를 장기간 끌고 갈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의 이번 1년 및 5년 기대인플레율은 모두 시장의 전망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이번 발표 이후 시장 한편에서는 연준이 추가 긴축을 실시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왔다. 연준 이사의 추가 긴축 가능성 거론이 그 배경이었다. 12일 미셸 보먼 연준 이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진행된 금융 관련 심포지엄에서 “물가상승률이 높고 노동시장이 긴축적인 상태가 이어진다면 추가적인 통화 긴축이 적절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달 19~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도 증시에서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소재가 되고 있다. 이번 모임이 서방 주요국들의 대중(對中) 견제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번 주 투자자들이 주목할 대상 중 하나는 16일 발표되는 미국의 소매판매다. 연준 관계자들의 공개발언도 줄줄이 예정돼 있다. 이번 주 공개발언에 나서는 인물은 리사 쿡 이사(15일), 존 윌리엄스 뉴욕 연은 총재(16일) 등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19일 공개발언 기회를 갖는다.

한편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5.62포인트(0.23%) 내린 2469.80에 개장해 약세를 이어가다가 막판에 반등하는 흐름을 보였다. 종가는 전장 대비 3.93포인트(0.16%) 오른 2479.3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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