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하림 기자]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유럽연합(EU)의 합병 승인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시도가 3년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대한항공은 이달 말까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합병에 대한 시정조치안을 제출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 = 대한항공 제공]
[사진 = 대한항공 제공]

◇ 3년째 이어진 인수 시도...그간 무슨 일이 있었나

대한항공이 공식적으로 아시아나항공 합병 의사를 밝힌 것은 2020년 11월이다. 대한항공 조원태 회장은 인수에 대해 “대한민국 항공산업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고 공적자금 투입 최소화로 국민 부담을 덜기 위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당시 아시아나항공은 부채비율이 2300%에 이르는 등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아시아나항공을 살리기 위해 많은 돈을 투입한 한국산업은행도 자금 회수를 위해 대한항공을 지지했다. 산은이 현재까지 아시아나항공에 투입한 공적자금은 3조6000억원에 이른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의 인수에 성공하면 글로벌 항공사 10위권에 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인구 1억명 이하 국가는 대부분 대형 항공사 1개만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인수를 통해 글로벌 항공사들과 겨룰 수 있는 기반이 생긴다는 주장이다. 규모의 경제를 통한 원가 절감, 인천공항의 여객-화물 연결 네트워크 강화 등도 장점으로 꼽았다.

문제는 대한민국 항공업계를 양분하던 두 대기업의 합병은 단순히 돈만 있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매출액 기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한국-유럽 노선 항공화물 점유율은 59.6%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보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기준인 50%를 넘는다. 더불어 비행기는 외국 공항에도 착륙하는 만큼 각 나라 경쟁당국의 합병 승인도 받아야 한다.

지난해 2월 공정위는 10년간 일부 노선의 슬롯(해당 시간대 운항을 허가받은 권리)과 운수권(정부가 배분한 운항 권리)을 이전하고, 운임을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올릴 수 없게 하는 조건으로 합병을 승인했다. 필수 신고 9개국 중 튀르키예·대만·태국·베트남은 앞선 2021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합병을 승인했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양사 중복노선 중 경쟁제한 우려가 있는 노선 4개의 슬롯을 추가로 이전하는 조건을 내세웠고 대한항공은 이를 받아들였다.

◇ 대한항공이 앞으로 넘어야 하는 고개는?

이제 필수 신고 9개국 중 남은 것은 EU·미국·일본이다. 특히 까다로운 것은 EU다. 당초 EU는 8월 3일까지 합병 승인 여부를 발표하기로 했지만, 독과점 우려를 이유로 10월까지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EU는 지난해 국내 조선업계 1, 2위인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을 독과점 우려로 무산시킨 바 있다. 필수 신고국 중 한 곳이라도 반대표를 던지면 합병은 무산된다.

앞선 사례로 미루어 봤을 때, EU도 슬롯·운수권 반납 등의 여러 합병 승인 조건을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이달 복수의 언론은 대한항공이 독과점 우려 해소를 위해 한국~유럽 4개 여객 노선(프랑크푸르트, 파리, 로마, 바르셀로나) 운수권을 티웨이항공에 이관, 티웨이항공에 항공기 대여 및 조종사 100명 파견, 아시아나항공 화물 사업부 분리 매각 등의 내용이 담긴 시정조치안을 준비했다고 보도했다.

이러다 보니 사실상 ‘알맹이가 빠진’ 합병이 되지 않겠냐는 회의론도 나온다. 이미 다른 경쟁당국의 승인을 받기 위해 포기한 슬롯과 운수권도 가치를 환산하면 몇천억원 수준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알짜 사업인 화물 사업부까지 분리하면 시너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화물 사업 매출은 3조원에 이른다.

현장에서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는 이달 11일 성명을 내 “대한민국 국민의 재산인 운수권을 반납하고, 화물사업 매각으로 조종사들의 고용불안을 야기하는 산업은행의 무리한 합병 진행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여러 난관을 넘어 EU의 승인을 받는대도 미국과 일본이 못지않은 요구를 해올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나이스경제와 통화에서 “시정조치안의 세부 내용은 확인 불가하다”면서도 “국부 유출이 되지 않도록 슬롯이 외국에 넘어가는 것은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종사협회의 고용불안 우려에 대해서는 “합병으로 인한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다고 수차례 밝힌 바 있다”고 전했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의 결정도 변수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달 24일 이사회를 열고 화물 사업 매각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일단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는 여전히 강하다. 한진그룹 조원태 회장은 지난 6월 미국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양사 합병에 100% 올인하고 있다. 무엇을 포기하든 성사시킬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정부 주도로 우리나라 항공산업 생존을 위해 진행된 인수 통합 추진이며,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해외 경쟁당국으로부터 기업결합심사 승인을 얻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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