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하림 기자] 의류 업체의 실적을 결정짓는 요소는 여럿 있겠으나, 재고 관리를 빠뜨릴 수는 없다.

재고, 즉 팔지 못하고 남은 옷은 패션업계의 만성적인 골칫거리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2021년 국내 의류 업체의 생산액 대비 의류 재고 비율은 매년 20~30%가량이었다. 다른 제조업의 재고율이 10% 안팎인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유행이 지나거나 오래된 옷은 팔리지 않으니 결국 소각하게 된다.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는 매년 국내에서 50만~60만t의 의류 재고 폐기물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금전적 손해임은 물론 환경에도 악영향을 준다. 옷을 만드는 데 사용된 자원을 낭비할뿐더러 소각 시 유독가스·온실가스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프랑스는 의류재고폐기금지법을 만들어 아예 재고 버리기를 금지하고 있다.

[자료 = 통계청 제공/장혜영 의원실]
[자료 = 통계청 제공/장혜영 의원실]

최근 여러 국내 의류 업체들은 영업이익을 위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위해 재고 관리에 힘쓰고 있다. ‘이랜드 스피드 오피스’를 통한 소량 생산으로 정확한 수요를 파악하는 이랜드, 재고 의류를 활용해 업사이클링 브랜드를 만든 코오롱FnC가 대표적인 예다.

◇ 이랜드, 정확한 수요 예측으로 재고를 줄여라

이랜드는 지난해 3월 서울 성동구 소재 생산업체 2곳과 협약을 맺고 이랜드 스피드 오피스를 열었다. 이랜드 스피드 오피스의 모토는 ‘고객이 필요로 하는 수량의 의류만 생산한다’이다. 48시간 만에 200여장의 의류를 만들어 빠르게 수요를 테스트하고, 반응이 좋으면 베트남에 위치한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식이다.

소량 생산으로 수요를 예측한 뒤 최종 생산 수량을 결정한다. 얼핏 들으면 간단한 개념 같다. 하지만 이랜드가 소량·신속 생산 시스템을 갖추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하나의 상품을 만들기 위해선 기획부터 소재, 부자재 등 갖춰야 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랜드는 몇 년간의 테스트를 거쳐 ‘2일 생산 시스템’을 스파오, 후아유, 미쏘 등 이랜드 SPA브랜드에서 상용화했다. 노력은 빛을 봤다. 지난해 봄·여름 시즌 스파오의 정상 판매율은 50%가량이었으나 올해는 80%로 수직 상승했다. 영업이익도 전년보다 8배 증가한 350억원이었다.

이랜드 스파오 매장 내부. [사진 = 이랜드 제공]
이랜드 스파오 매장 내부. [사진 = 이랜드 제공]

이랜드 관계자는 기자에게 “2일 생산 시스템은 이랜드가 세계 최초로 개발해 상용화한 차세대 생산 방식으로, 의류 재고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해 ‘무재고 경영’을 가능하게 한다”며 “도입 이후 재고율이 유의미하게 낮아졌으며, 이익률도 올랐다”고 설명했다. 이랜드 최운식 대표는 이랜드 스피드 오피스 등을 통해 국내 중소 섬유 업체와 상생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1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 코오롱FnC, 업사이클링으로 ESG경영 잡는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이하 코오롱FnC)은 폐의류로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내는 ‘업사이클링’에 집중했다. 2012년 코오롱FnC는 국내 최초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 ‘래코드’를 선보였다. 래코드는 3년 차 재고 의류를 가지고 새로운 패션 아이템을 만들어 낸다. 제작자 1명이 수작업으로 폐의류를 해체하고 기워내며, 독자적인 디자인 요소를 가미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래코드가 다시 살려낸 옷은 올해 2분기 기준 3만장 이상이다.

업사이클링 상품 전용 공간도 있다. 지난해 1월 문을 연 ‘솟솟리버스 제주점’은 코오롱스포츠의 1~2년차 재고를 리디자인해 만든 상품들을 모은 공간이다. 솟솟리버스 2층에는 래코드 매장도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코오롱FnC는 폐의류에서 실을 뽑아내는 ‘서큘러 패션’(순환 패션)에 관심을 두고 있다. 코오롱FnC는 지난달 12일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2024년 몽골·베트남에 서큘레이션 센터를 구축하기로 했다. 자회사 ‘KOA’와 함께 폐 캐시미어를 재생해 새로운 상품을 만들겠다는 설명이다. 코오롱FnC는 지난해 몽골에서 지속 가능 캐시미어 소재 사업을 하던 KOA를 인수한 바 있다.

코오롱FnC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업사이클링으로 모든 재고를 소화할 수는 없지만, 환경 문제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의미로 봐주면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재고 자체를 줄이기 위해 데이터 기반으로 생산량을 예측하는 시스템도 최근 일부 브랜드에서 시험 가동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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