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하림 기자] ‘한한령(限韓令·한류금지령)’ 해제 및 엔데믹으로 부풀었던 ‘유커 관련주’가 하락세를 그리고 있다. 신라면세점을 운영하는 호텔신라, 화장품 양대 업체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이 최근 아쉬운 3분기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일각에선 단체 관광에서 개별 관광으로 관광산업 지형이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 아쉬운 3분기 성적표 받아든 면세·화장품업계

‘유커(遊客)’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을 말한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은 많은 인원과 높은 객단가로 우리나라 관광 관련 산업에서 ‘큰손’ 역할을 해왔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한한령 직전인 2016년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수는 807만명이었다. 2016년 중국인 관광객의 1인당 평균 지출 경비는 2059.5달러(약 272만6000원)로 미국인 관광객(1206.5달러)과 일본인 관광객(813.9달러)보다 한참 앞섰다.

호텔신라 면세점. [사진 = 호텔신라 제공]
호텔신라 면세점. [사진 = 호텔신라 제공]

그러나 이제는 중국인들의 여행 모습이 달라진 것일까. 한국 여행 빗장이 활짝 열렸음에도 기존 유커 관련주의 실적은 기대만큼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달 27일 호텔신라에 따르면 신라면세점의 3분기 매출은 8451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1977억원)보다 29% 감소했다. 영업손실도 163억원을 기록했다. 한한령이 해제된 8월 9만원대까지 올라간 호텔신라 주가는 이달 3일 6만3900원으로 떨어졌다.

더후 등 중국인에게 인기 높은 화장품 브랜드를 보유한 LG생활건강도 예상만큼의 실적은 나오지 않는 모양새다. 3분기 LG생활건강은 지난해보다 15% 감소한 6702억원의 매출과 88% 감소한 8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8월 49만8000원까지 갔던 주가는 이달 3일 32만8000원까지 추락했다. 아모레퍼시픽 역시 국내사업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7.5% 감소한 5432억원, 영업이익은 34.5% 감소한 191억원이었다. 업계에선 면세점 매출 부진이 화장품업계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하고 있다.

특기할 만한 부분은 면세점 방문객 수 자체는 지난해보다 훨씬 높다는 점이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8월 한국에 온 중국인 관광객 수는 전년 동기보다 88% 상승한 25만9659명이었다. 한국면세점협회도 8월 면세점 외국인 이용객 수가 지난해보다 307% 증가한 59만4385명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같은 기간 면세점의 외국인 매출액은 지난해 8월 1조4308억원에서 올해 8월 8990억원으로 37% 감소했다.

◇ 중국인 관광객의 소비 패턴이 바뀌었다?

기존 유커 관련주가 줄줄이 쓴맛을 보는 이유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한한령 이전인 2016년과 현재의 중국인 관광객의 소비 패턴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지난 9월 중국 ‘유커 유입과 중소·소상공인 대응 전략’ 보고서를 내고 중국인 관광객 소비 패턴 변화 두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해외여행을 가는 젊은층(1980년대~2000년대생)이 늘었다. 6월 한국관광공사가 낸 자료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해외 관광시장을 개방한 직후 출발한 여행객 중 80년대생 이하는 92.2%였다. 코로나19 이전(2016~2019년) 방한 중국인 관광객 중 80년대생 이하는 62.9%를 차지했는데, 코로나19 이후(2023년 1월~7월)에는 68.4%로 증가했다.

둘째, 이들은 체험 중심의 자유 여행을 선호한다. 단체 여행객 중심의 쇼핑 관광은 감소하는 반면, ‘싼커(散客·개별 여행객)’ 중심의 맛집 투어, 로컬 체험 수요는 증가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올해 2~3월 한국 여행 의향이 있는 18~45세 중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자유여행을 선호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65%였다. 여행에서 기대하는 경험으로도 쇼핑(88%)보다 현지 음식(91%) 맛보기와 야경(91%) 즐기기 등을 더욱 희망했다.

이에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젊은 세대의 중국인 개별 관광객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으며, 수요 변화에 맞게 로컬 체험 중심의 관광상품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기존의 단체 관광객 상권인 명동은 물론이고 압구정·성수·홍대 등 젊은층이 선호하는 곳을 찾는 개별 중국인 관광객이 느는 추세다. CU에 따르면 중국 국경절 연휴 기간(9월29일~10월6일) 중국인 결제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명동에서 357.8%, 압구정로데오 258.4%, 성수 116.8%, 홍대에서는 113.7% 증가했다.

◇ 변화한 소비 패턴 대응에 나선 면세·화장품업계

‘따이궁(代購·보따리상)’이 준 것도 면세점 및 화장품 매출 감소에 영향을 끼쳤다. 올초 면세점 업계는 보따리상에게 주는 송객수수료를 대폭 낮췄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보따리상이 한 번에 화장품 몇만개씩 사가며 매출을 견인했지만, 보따리상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이 붙으며 송객수수료가 과도해졌다”며 “송객수수료를 낮춘 후 보따리상이 줄어 객단가가 평균화됐다”고 설명했다. 보따리상의 감소로 당장은 매출이 줄어도 장기적으로는 체질 개선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신라면세점은 변화한 관광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면세점을 단순 쇼핑공간이 아닌 문화예술 체험공간으로 탈바꿈하겠다고 밝혔다. 신라면세점 서울점은 지난 5월 아모레퍼시픽과 ‘유행화장전’ 팝업 전시를 선보였고, 6월에는 잔디밭에서 플리마켓 ‘더 신라 빌 마켓’을 열었다. 최근에는 신라면세점 옥상 공간까지 루프탑 카페로 오픈해 고객들에게 쉴 공간과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화장품 업체들은 리브랜딩으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올해 8월 중국 상하이에서 행사를 열어 더후 천기단 리뉴얼을 발표했다. 더불어 단체 관광객, 개별 관광객, 보따리상을 아우르는 고객 유형별 맞춤 패키지를 마련하여 다변화된 소비 패턴에 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아모레퍼시픽도 앞선 작년 9월 설화수의 로고와 모델을 바꾸며 브랜드 리뉴얼을 진행한 바 있다.

다만 증권가에선 면세·화장품 업계 상황이 마냥 낙관적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나증권 서현정 연구원은 “중국 소비경기 위축이라는 ‘경기적 문제’와 보따리상 수요 둔화, 면세 쇼핑 선호도 하락 우려, 중국 화장품 시장에서 글로벌 브랜드에 대한 수요 감소 등 산업의 ‘구조적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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