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흥국생명빌딩 앞 해머링맨. [사진  = 유정환 기자]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앞 해머링맨. [사진 = 유정환 기자]

[나이스경제 = 유정환 기자] 광화문 태광그룹 흥국생명빌딩 앞을 가면 조형물 ‘해머링맨’을 볼 수 있다. 해머링맨은 유명 미국 조각가 조나단 브로프스키의 연작으로 2002년 만들어져 어느덧 올해 21주년를 맞이했다. 본래 홀로 망치질을 반복하는 모습을 통해 현대인의 고독함과 기계적인 삶을 표현하고 있었으나 이 해머링맨의 태광그룹이 최근 ‘ESG경영’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그 두드리는 망치에도 새로운 의미가 담길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태광그룹의 ESG경영 현황과 함께 그 중심에 자리한 세화 미술관을 직접 찾아가 보았다.

태광그룹은 지난달 16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중심 경영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미래위원회를 출범했다. 미래위원회는 그룹 차원에서 ESG 추진과 그룹 비전 및 사업전략 수립을 담당한다. 태광그룹은 ESG 추진 목표를 △불확실한 미래 경영환경 돌파와 제3의 창업을 위한 새로운 좌표 설정 △태광그룹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그룹 차원의 사회적 기여 제고 △ESG 실천을 통한 조직문화 개선과 신사업 추진 가속화로 설정했다.

당시 태광그룹 관계자는 “11월 중 그룹 차원의 ESG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내년 1월까지 이를 실행하기 위한 실천계획을 설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그룹 차원에서 ESG경영 신호탄을 쏘자 곧바로 계열사들도 그 뒤를 이었다. 태광그룹 섬유·석유화학 계열사 태광산업은 이사회를 열어 ESG위원회 설치 안건을 승인했다고 지난 1일 밝혔고 대한화섬 역시 이사회를 통해 지난달 27일 ESG위원회를 설치했다고 전했다.

태광산업 관계자는 “기업 거버넌스 개선, 협력사와의 소통 강화, ESG 관점의 주주권 행사 등 사업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며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한 이사회 중심의 독립경영 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는 환경경영, 상생과 동반성장을 통한 사회적 책임 이행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ESG경영은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뜻한다. 그 범주가 워낙 큰 울타리를 두고 있는 터라 기업들의 ESG 활동을 말할 때 친환경, 사회공헌 활동이 주로 언급된다. 그런 측면에서 태광그룹 내 ESG위원회 설립은 시기상 타 기업에 비해 다소 늦은 감이 있으나 그룹의 행적을 살펴보면 ESG라는 명목이 없었을 뿐 관련 활동을 이어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태광그룹은 지난해 12월 친환경 분야, 고기능성 소재 개발 등 신사업에 2023년부터 2032년 동안 총 12조원을 투자하겠단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태광산업·대한화섬에선 리사이클 친환경 섬유 브랜드 ‘에이스포라-에코’를 운영하면서 지난해 울산항만공사와의 업무협약을 통해 리사이클 원사로 작업복을 만들어 태광산업·대한화섬 울산공장 근로자에게 지급하고 흥국생명 여자배구단 핑크스파이더스 친환경 유니폼을 제작하는 등 친환경 활동에 나서고 있다.

또한 태광그룹은 1990년 일주학술문화재단을 설립해 33년째 장학사업을 꾸려오고 있으며, 문화예술 대중화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2009년 세화예술문화재단을 설립해 2017년엔 세화미술관을 개관했다. 세화미술관에선 개관 이래 꾸준히 신진작가를 포함한 국내 작가들의 기획 전시를 개최하면서 창작 지원을 하는 등 다양한 문화사업을 추진해 국내 문화예술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엔 ‘논알고리즘 챌린지’ 기획전시 시리즈를 시작하기도 했다.

배인숙 작가의 사운드 오브 시티. [사진 = 유정환 기자]
배인숙 작가의 사운드 오브 시티. [사진 = 유정환 기자]

◇ 세화미술관, ‘소리’로 가득 채운 전시 <귀맞춤(Tuning the Ears)>

흥국생명빌딩 3층에 위치한 세화미술관에선 오는 26일까지 논알고리즘 챌린지 첫 번째 전시회 <귀맞춤(Tuning the Ears)>이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는 고도화된 인공지능과의 공존 시대에 이르러 AI와 차별화된 '인간다움'을 탐색하는 주제로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과 비인간의 존재와 관계 속에서 인간다움에 대해 다각적으로 생각해보는 3부작 기획전시 프로젝트다.

인간을 대체하는 인공지능의 영역이 점차 확대될수록 인간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는 주제에 걸맞게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전시에서 접할 수 있다. 이번 <귀맞춤>은 외부 데이터를 처리하는 인간의 독특한 방식인 ‘감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청각’에 주목해 배인숙, 원우리, 전형산 작가가 ‘듣기’를 주제로 제작한 작품을 선보인다.

원우리 작가의 와우-로그. [사진 = 유정환 기자]
원우리 작가의 와우-로그. [사진 = 유정환 기자]

기존 시각중심주의에서의 전시에서 체감하기 어려웠던 ‘청각’의 기능을 증폭시킨 체험전시가 주를 이뤄 흥미로웠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조명 속에서 들려오는 잡음이 귀를 곤두서게 만들어 외려 작품에 대한 몰입을 도와줬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원우리 작가의 <음정 응답>이란 작품이다. 해당 작품에선 관람객이 컨트롤러를 직접 조정해 컴퓨터가 제시하는 음 간격을 듣고 듣기 좋은 것과 싫은 것을 선택할 수 있었다. 멜로디 없이 단순히 들려오는 음에 대한 기호를 갖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고 그렇게 연달아 선택한 전자음이 일정 모이면 컴퓨터가 그 데이터를 통해 나의 취향을 예상해 멜로디로 들려준다. 들려오는 낯선 멜로디에 마치 작곡에 참여한 것과도 같은 기분이 드는 듯하면서도 나도 몰랐던 새로운 소리취향(?)을 알게 되는 듯한 느낌이다.

원우리 작가의 음정 응답. [사진 = 유정환 기자]
원우리 작가의 음정 응답. [사진 = 유정환 기자]

또한 전형산 작가의 <다크필드; 모리스>라는 작품에선 새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작품 내 스마트폰 6대를 벽에 배치해 숏품 형식의 인스타그램 릴스가 송출되는 익숙하면서도 이색적인 풍경을 볼 수 있었는데 전시 관람 중 일상과 맞닿은 부분을 마주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세화미술관 현장 관계자는 “지금껏 세화미술관의 전시는 일반적으로 신진작가 작품 위주였으나 이번 기획전시는 기획에 더욱 주력하기 위해서 기성작가가 혼합된 작가진을 구성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처럼 명확한 주제의식을 담은 기획 전시이기에 향후 진행될 ‘신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파트2 <가장 깊은 곳은 피부다>,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파트3 <4도씨> 전시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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