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고물가 장기화 탓에 인플레이션이라는 말은 이제 우리의 일상어가 되어버렸다. 이 말은 현실적으로 물가가 이상적 수준인 2%의 상승률 이상으로 움직일 때 쓰인다.

인플레 정도를 수치화한 대표적 지표가 소비자물가지수(CPI)다. CPI는 총지수로서 그나마 변동폭이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고물가 시대에 더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CPI를 구성하는 특정 품목들의 가격 흐름이다. CPI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의 가격이 요동칠 경우엔 총지수도 덩달아 춤을 추게 된다.

수년 간 나타나고 있는 국제적 고물가 현상은 주로 농산물 가격과 유가의 강세에 기인했다. 2020년 초부터 본격화한 코로나19 팬데믹도 공급망에 차질을 일으키며 물가 상승을 재촉했다. 그 결과 물가지수 상승을 자극하는 품목도 보다 다양해졌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다양한 품목에서 물가가 널뛰기를 하자 언론들은 그 때마다 해당 품목명에 인플레이션이란 말을 붙여 만든 합성어를 사용하곤 했다. 유가가 상승해 전반적인 물가지수를 끌어올릴 땐 오일플레이션, 농산물 값이 크게 뛰어 전반적 물가 수준을 높일 때는 애그플레이션이란 말을 동원했다. 애그플레이션은 농업이란 의미의 단어 ‘agriculture’와 ‘inflation’을 합쳐서 만든 말이다.

국내에서 한동안 계란 값이 치솟아 파동이 일었을 땐 계란(egg)과 인플레이션을 합성한 ‘에그플레이션’이란 단어가 언론에 오르내리곤 했다. 계란 역시 우리의 식탁에 자주 오르는 품목이어서 생활물가(체감물가)는 물론 전체 물가지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물가가 유별나게 오르는 품목 이름에 인플레이션이란 말을 합성해 만들어진 기타 용어로는 슈거플레이션, 피그플레이션, 밀크플레이션, 버거플레이션 등등이 있다. 각각 설탕과 돼지고기, 우유, 햄버거 가격이 크게 올라 물가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때 언론에 등장하곤 했던 용어들이다.

이들 품목의 공통점은 일상에서의 소비 빈도가 높아 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이들 품목의 물가 변화는 소비자들에게 지수 상승률 이상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밀크플레이션이 주로 국내 상황을 반영하는 단어인 것과 달리 요즘 자주 쓰이는 슈거플레이션은 전세계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 9월 설탕가격지수는 13년 만의 최고치인 162.7을 마크했다. 작년 10월 지수가 108.6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근래에 설탕값이 얼마나 많이 올랐는지 짐작할 수 있다. 모든 지수가 그렇듯 이 지수도 100을 기준(기준연도 2014~2016년 평균가격)으로 삼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세계적 설탕 가격 상승은 기후환경 변화로 인해 태국과 인도 등 주요 설탕 생산국에서 생산량이 감소함으로써 나타났다. 직접적 원인은 가뭄에 의한 강수량 부족이다.

인플레이션 관련 합성어엔 품목명 대신 특정 현상이나 행위를 의미하는 단어를 붙여 만들어진 것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요즘 유행어처럼 쓰이는 ‘슈링크플레이션’과 ‘스킴플레이션’이다. 이들 용어는 소비자들의 부정적 감정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줄어들다'라는 의미의 단어 ‘shrink’에 인플레이션이란 말이 덧붙여져 만들어진 개념이다. 가격을 올리지 않되 제품의 양이나 무게를 줄여 실질적으로 가격을 인상하고 그 여파로 전체 물가수준을 끌어올리는 행위를 지칭한다.

이런 행위가 요즘 국내에서 심심찮게 발견되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직한 판매 행위가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생산업체들이 변화 내용을 알린다고 할지라도 은연중 소비자를 기만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는 일반의 정서를 대변했다고 할 수 있다.

이보다 교묘한 방법이라는 평을 듣는 것이 ‘스킴플레이션’이다. 이 단어는 ‘아낀다’라는 뜻을 지닌 단어 ‘skimp’와 인플레이션을 합쳐 만든 것이다. 이 합성어는 가격을 유지하되 제품이나 서비스의 질을 낮춤으로써 사실상 상품 및 서비스의 가격을 올리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오렌지주스 제품을 생산하면서 오렌지 주스 원액의 함량을 줄인다든지, 치킨점에서 튀김용 기름을 보다 싼 것으로 바꾸어 치킨을 튀겨낸다든지 하는 것이 스킴플레이션의 구체적 사례에 해당한다. 실제로 최근 롯데칠성음료의 델몬트 오렌지 주스와 BBQ치킨의 치킨 메뉴에서 이런 현상이 구현됐다.

음식점에서 사이드메뉴를 줄인 채 음식값을 이전처럼 받는 것도 스킴플레이션에 해당한다. 키오스크를 새로 설치하거나 설치 댓수를 늘려 기존 서비스의 일정 부분을 손님들에게 떠넘기고도 음식값을 동일하게 받는 것 역시 스킴플레이션 범주에 들어간다.

슈링크플레이션과 스킴플레이션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공급자 측도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원가가 올랐지만 물건 및 서비스 가격을 그대로 올려 받으면 소비자들이 외면하는 것은 물론 물가관리 당국이 압력을 가하는 예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당국이 물가의 세부 변화에 일일이 강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힘으로 물가를 억누르면 공급자들은 언젠가 제때 올리지 못한 부분까지 합쳐 한꺼번에 상품 및 서비스 가격을 올리기 마련이라는 게 비판의 주요 논거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