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셰일 오일이 국제적 석유 카르텔을 붕괴시키는 도구로서의 위상을 되찾아 가고 있다. 주요 산유국들이 담합을 통해 생산량을 조절하며 국제유가를 쥐락펴락하자 반휴면 상태에 있던 미국 셰일 오일 업체들이 다시 생산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과거 오일쇼크 이후 미국산 셰일 오일은 한동안 국제유가를 잡는 조정자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었다. 전통적 방식의 석유 채굴에 비해 생산비용이 많이 드는 탓에 셰일 오일 생산업체들은 평소엔 생산활동을 뜸하게 했다. 저유가 시기엔 생산을 해봤자 남는 것이 없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그러다 국제유가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생산 활동을 늘리는 것이 미국 셰일 오일 업체들의 일반적 행태였다. 채산성을 맞출 수 있는 수준은 시기별로 달랐지만 대체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60~70 달러가 넘어서면 셰일 오일 업체들은 휴면에서 벗어나 기지개를 켜곤 했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최근 수년 동안 이 공식이 통하지 않게 됐다. 그런 변화는 특히 진보이념을 추구하는 조 바이든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이후 보다 뚜렷해졌다. 미국의 셰일 오일 생산업체들이 강화된 각종 환경규제를 마주하게 된 것이 원인중 하나였다.

셰일 오일은 셰일이란 이름을 가진 지하 퇴적암의 좁은 틈에 스며들어 있는 석유를 말한다. 이를 채굴하기 위해 업자들은 모래가 섞인 물을 강하게 분사해 암반을 부수는 작업을 진행한다. 이 같은 독특한 채굴 방식 탓에 셰일 오일 생산에는 특수한 장비와 많은 비용이 투입된다.

생산비용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오늘날에는 비용 못지않게 환경 보존이라는 무거운 의무가 셰일 오일 업체들에게 주어져 있다. 게다가 미국에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서 생산업체들의 환경보존에 대한 부담은 보다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들어 셰일 오일 채굴이 다시 활발해진 것은 기술 혁신 덕분이다. 채굴 기술 혁신은 전보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셰일 오일을 생산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당연히 환경파괴 시비에서도 보다 자유로워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블룸버그의 최근 보도에 의하면 미국 업체인 다이아몬드백 에너지는 최근 3년 사이 유정에서 셰일 오일을 채굴해내는데 걸리는 시간을 40%가량 단축했다. 이에 따라 미국산 셰일 오일 생산량은 당초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월등히 많아지게 됐다.

[사진 = AFP/연합뉴스]
[사진 = AFP/연합뉴스]

셰일 오일 생산 증대는 국제유가에 곧바로 영향을 미쳤다. 요즘 국제유가는 대체로 배럴당 70달러대를 기록하고 있다. 로이터와 블룸버그 등은 19일(현지시간)자 보도를 통해 이날 국제석유시장에서는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가 배럴당 73.44달러에 거래됐다고 전했다. 이는 그나마 전날보다 1.34%, 연 이틀간 2.81% 상승한 가격이다.

같은 날 브렌트유 선물가도 배럴당 79.23달러를 기록했다. 이 역시 전날보다 1.6% 오른 값으로 이달 최고치에 해당한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최근의 유가 동향과 관련, 미국 주도의 비(非)석유수출국기구(OPEC) 산유국들이 공급을 지속하고 있는 점을 언급했다. 골드만삭스는 또 미국이 내년에도 셰일 오일 생산을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구체적으로는 내년 4분기중 하루 생산량이 1140만 배럴, 내년중 원유 공급량의 총증가분은 90만 배럴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았다. 내년중 총증가분 전망치는 기존보다 40만 배럴 많아졌다.

이를 토대로 골드만삭스가 예상한 내년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70~90달러였다. 보도에 따르면 브렌트유는 내년 6월 배럴당 85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2024년엔 평균 81달러, 그 이듬해엔 평균 80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골드만삭스는 중국경제의 회복세, 미국의 전략 비축유 재보충 등이 유가 하락 가능성을 일정 정도 제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셰일 오일 증산이 국제유가 하락세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는 분석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곳은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었다. EIA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올해 4분기에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평균 1326만 배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년 전 EIA는 올해 4분기 미국의 일일 생산량이 1251만 배럴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늘어난 일일 예상 생산량은 75만 배럴이다. 이 정도면 남미의 산유국인 베네수엘라가 하루에 생산하는 원유량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EIA의 올해 4분기 예상 생산량에 오차가 발생한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비상장 업체들의 셰일 오일 생산량 증대다. 이들의 동향을 파악하지 못한 채 대형 업체들의 시추장비 구입에 큰 변화가 없었다는 점만을 토대로 생산량을 추정한 것이 전망 오류의 직접적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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