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태영건설 사태로 표면화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부실 문제가 우리 경제 전반에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 불똥이 태영건설과 건설업계를 넘어 금융권, 더 나아가 경제 전반으로 번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이다.

부동산 PF대출 부실은 진작부터 우리 경제의 새로운 뇌관으로 자리잡아왔다. 긴 저금리시대를 지나며 건설사들이 사업을 확장하느라 늘려온 PF대출이 최근 수년간 이어진 고금리 환경을 견디지 못하게 된 점이 그 배경이다.

극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가장 먼저 무너진 곳이 태영건설이다. 태영건설은 28일 공시를 통해 워크아웃 신청 사실을 전격적으로 알렸다. 태영은 “다각도의 자구 노력을 기울였지만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으로부터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상 부실징후 기업으로 선정됐다”며 “이에 따라 워크아웃, 즉 기촉법에 따른 금융채권자협의회의 공동관리절차를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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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서울 성수동 오피스텔빌딩의 PF대출 480억원 미상환이었다. 문제는 사태가 여기서 끝날 만큼 내부 사정이 간단치 않다는 데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의하면 태영건설의 올해 3분기 말 장기차입금은 총 1조4942억원, 단기차입금은 총 6608억원이다. 이중 국내 은행권으로부터 빌린 돈의 합계만 7243억원이다. 장기차입금 4693억원과 단기차입금 2250억원 등이 포함된 게 그 정도다. 문제가 된 PF대출은 장기차입금 4693억원에 포함돼 있다.

태영건설에 대한 대출 채권을 가장 많이 보유한 금융기관은 산업은행이다. PF대출만 떼어놓고 보았을 땐 국민은행이 가장 많은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주채권은행으로서 PF 대출 1292억원과 단기차입금 710억원을 태영건설에 빌려줬다. 국민은행은 PF대출 1500억원과 단기차입금 100억원을, 기업은행은 PF대출 997억원을, 우리은행은 단기차입금 720억원을 각각 태영건설에 대출해주었다. 태영건설은 이들 금융기관 외에 보험사와 증권사 등 제2 금융권으로부터도 적지 않은 돈을 끌어다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채무 외에 태영건설이 보증한 PF 대출 중 상당액이 우발채무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문제다. 우발채무는 지금은 아니지만 돌발 상황에 의해 채무로 확정될 가능성이 있는 특수채무를 지칭한다. 사실상 채무로 보아도 무방한 개념이다. 이를테면 건물을 다 지었는데 분양이 되지 않을 경우 등에 우발채무는 곧바로 정식 채무로 확정된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한국투자증권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태영건설이 보증한 부동산 PF 잔액은 4조4100억원에 이른다. 이중 순수 부동산 PF 잔액은 3조2000억원이다. 위 보고서는 태영건설이 보증한 부동산 PF 가운데 7200억원을 우발채무로 보고 있다.

한국기업평가의 최근 보고서는 태영건설의 우발채무 규모를 이보다 많은 1조2565억원으로 평가했다.

정부 당국과 금융권이 보다 심각히 우려하는 바는 태영건설 사태를 시작으로 PF대출 부실 문제가 본격적으로 노정되는 것 아니냐 하는 점이다. 안 그래도 올해 내내 우려를 쌓아온 것 중 대표적 사안이 PF대출 부실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결국은 금융권 전반을 불안하게 만드는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금융 당국에 따르면 올해 말 기준 PF대출 잔액은 134조3000억원을 헤아린다. 이는 2020년 말의 92조5000억원, 2021년 말의 112조9000억원 등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많은 액수다. 대출 규모의 빠른 증가도 문제지만 더 심각히 봐야 할 점은 연체율의 빠른 상승이다. 2022년 말 0.55%이던 연체율은 올해 9월 말 현재 2.42%로 올라가 있었다. 누적된 연체규모는 3조원을 넘어섰다.

그간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앞서 ‘PF 대주단 협약’을 활용해 부실해진 PF대출에 대해 만기를 연장해주는 등의 조치를 취해왔다. 하지만 이는 부동산 경기가 되살아나기를 기다리며 건설업체들에게 잠시 한숨 돌릴 틈을 주는데 불과한 조치였을 뿐 대출 부실 자체를 해소할 수단은 되어주지 못했다. 대출 부실의 근본적인 원인은 부동산 경기 침체와 고금리의 장기화였다.

태영건설의 이번 워크아웃 신청은 정부의 지원책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부실 대출을 일일이 지원하는 것이 어차피 불가능한 만큼 부실이 심화된 업체는 자기 책임 하에 스스로 활로를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 왔음을 알리는 첫 신호라는 의미다.

이 일로 시장에서는 PF대출 부실 문제가 당분간 더 노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더 많은 건설기업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고 그 과정에서 뼈를 깎는 생존게임이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워크아웃은 채권단의 압도적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며 절차가 시작되면 채권단 관리 하에 대출 만기 조정과 자금 지원 등이 이뤄진다.

정부는 PF대출 부실 문제가 건설업체 전반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데 일차 목적을 둘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이 문제가 국내 금융권 부실로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진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대부분의 금융기관들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보증 상품에 가입한 만큼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에 의한 직접 타격은 없을 것이란 입장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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