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하림 기자] 60년 만에 남양유업의 주인이 바뀌었다. 지난 4일 대법원은 남양유업 홍원식 회장 일가와 한앤컴퍼니(한앤코) 사이의 주식 양도 소송에서 한앤코의 손을 들어줬다. 근 10여년간 대리점 강매 사건, 불가리스 허위 광고 사건 등으로 소비자의 신뢰를 잃은 남양유업은 한앤코의 품에서 도약의 날개를 펼칠 수 있을까.

◇남양유업 ‘오너 리스크’ 해소하나…시장 기대치 높아

대법원은 홍원식 회장 일가가 가진 남양유업 지분 53%를 한앤코에 넘겨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로써 1964년 홍원식 회장의 아버지인 고(故) 홍두영 명예회장이 창업한 남양유업은 사모펀드 운용사 한앤코의 품에 넘어갔다. 같은 날 한앤코는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며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고 새로운 남양유업을 만들어 나아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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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 창업주 일가와 한앤코가 경영권을 두고 분쟁을 벌이게 된 배경을 살피려면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21년 4월 남양유업은 불가리스에 코로나바이러스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식품표시광고법 위반으로 고발당했다. 남양유업 홍원식 회장은 2021년 5월 대국민 사과를 내며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뒤이어 홍 회장은 창업주 일가가 가진 지분 53%를 3100억원에 한앤코에 양도하기로 계약했다.

하지만 ‘헐값 매각’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일까. 홍 회장은 주식 매도를 계속 미뤘고, 그해 8월 한앤코는 홍 회장에게 주식을 넘기라는 소송을 걸었다. 홍 회장은 9월 한앤코가 홍 회장 일가에 대한 예우 보장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그러나 1·2심 재판부와 대법원은 홍 회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한앤코가 최종 승소했다. 한앤코는 홍 회장에게 계약 미이행에 따른 5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소송도 걸었다.

이번 판결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는 높다. 대법원 판결이 가까워진 지난달 말부터 남양유업의 주가는 가파르게 올랐다. 지난달 21일 45만7500원이던 종가는 이달 9일 60만1000원으로 상승했다. 근 10여년간 남양유업을 들었다 놨다 한 ‘오너 리스크’ 해소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40년 이상 흑자 경영을 이어오며 ‘우량주’ 취급을 받았던 남양유업은 2013년 대리점 강매 사건이 터지며 급격히 추락했다. 당시 남양유업이 대리점에 물량 밀어내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남양유업 직원이 대리점 직원에게 욕설을 퍼부은 녹음본이 공개되며 전국적으로 불매 운동이 일어났다. 2012년 63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남양유업은 대리점 강매 사건으로 불매운동이 일어난 2013년 175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2020년에는 경쟁사인 매일유업을 비방하는 댓글을 조직적으로 달았던 것이 경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홍 회장은 이 사건으로 인해 2021년 3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홍 회장의 조카인 황하나씨가 대마초 등 마약을 10년 이상 복용해왔다는 것이 밝혀지며 2021년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받았다. 여기에 임신·육아휴직을 한 여직원에게 부당한 대우를 했다는 의혹이 여러 차례 보도되며 “분유를 파는 회사가 여직원에게 갑질을 한다”는 여론도 형성됐다.

◇ 한앤컴퍼니가 그리는 청사진은?

오너 리스크 해소에 대한 기대감이 높기는 하나, 한앤코가 마주해야 하는 상황은 만만치 않다. 우선 저출산 때문에 유업계 전반이 침체 상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신생아 수는 24만9000명으로 2012년(48만5000명)의 절반에 불과하다. 2020년 2조4651억원이던 우유 소매점 매출은 2022년 2조1766억원으로 10% 이상 감소했다.

그런 와중 경영권 분쟁에 발목을 잡히며 남양유업의 실적은 더욱 악화됐다. 2019년까지 1조원을 상회하던 남양유업의 매출은 2020년 9489억원, 2021년 9561억원, 2022년 9646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도 771억원, 779억원, 868억원으로 확대됐다.

사모펀드는 기업 가치를 높이고 되팔아 이윤을 얻는다. 이번에도 한앤코는 경영 효율화를 통해 기업 가치 올리기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앤코는 2021년 남양유업 인수 당시 집행임원제도를 도입해 투명한 경영과 관리, 감시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집행임원제도는 이사회와 별도로 업무 집행 기능을 전담하는 임원을 분리해서 운영하는 것이다. 또한 인위적인 구조조정 없이 기존 직원들의 고용을 승계하겠다고 밝혔다. 남양유업의 정기 주주총회가 3월로 예정되어 있어, 몇 달 내에 새로운 경영진도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웅진식품의 사례다. 한앤코는 2013년 950억원에 웅진식품을 인수하고 2018년 퉁이그룹에 2600억원에 매각한 경험이 있다. 그전까지 적자를 기록하던 웅진식품은 한앤코 매각 직후인 2014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업계에서는 한앤코의 ‘볼트온’(유관기업 추가 인수) 전략이 통했다고 분석했다. 당시 한앤코는 대영식품과 동부팜가야를 추가로 인수해 웅진식품과 시너지를 창출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전략을 사용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남양유업은 불가리스, 맛있는우유GT 등 스테디셀러를 다수 보유하고 있고, 1100개의 대리점 등 영업망도 건재하다. 경영 효율화와 더불어 브랜드 리뉴얼로 소비자 신뢰를 되찾으면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화투자증권 엄수진 연구원은 “남양유업의 새 주인이 된 한앤컴퍼니는 집행임원제도 도입, 직원들의 고용 승계, 훼손된 기업 이미지 제고, 실적 개선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구성원 모두 회사의 조속한 경영 정상화를 위해 본연의 자리에서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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