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소비가 탄탄하다는 것은 한 나라 경제가 꾸준히 성장해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표적 신호다. 당연히 경제에 좋은 소식이다. 내수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소비는 국내총생산(GDP)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 3위의 인구 대국(약 3억4000만명)이면서 개인 소득이 높은 미국의 경우라면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미국에서의 소비는 GDP의 3분의 2 정도를 차지한다. 우리가 GDP의 또 다른 구성요소인 순수출(수출-수입)에 비교적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그런데 17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는 ‘소비 호조 = 굿 뉴스’라는 일반적 경제상식에 반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날 양호한 내용의 미국 12월 소매판매 실적이 발표되자 뉴욕증시의 3대 지수가 일제히 하락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는 증시에서만큼은 투자자들이 소매판매 호조를 배드 뉴스로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

[사진 = EPA/연합뉴스]
[사진 = EPA/연합뉴스]

이날 뉴욕증시에서는 전장에 비해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가 0.25%,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0.56%, 나스닥지수는 0.59% 하락했다. 다우는 3거래일 연속, 나스닥은 2거래일 연속 하락을 기록했다.

이날 증시 주변에서는 미국의 12월 소매판매 외에 특별한 변수가 엿보이지 않았다. 결국 뉴욕증시 투자자들은 미국의 소비가 탄탄하다는 소식에 실망감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소비가 탄탄하다는 것은 미국 경제가 안정적 성장을 유지해나갈 수 있음을 의미하는데 이 점이 오히려 증시에 악재로 작용했다는 뜻이다.

이처럼 아이로니컬한 현상이 증시에서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 경제가 당분간 성장을 지속해 나갈 것이 확실시된다면 연방준비제도(연준)로서는 보다 자신 있게 인플레 파이팅에 나설 수 있게 된다. 이는 연준이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를 털고 보다 과감하게 인플레이션 타개에 나설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뉴욕증시에서는 최근 들어 조기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에 대한 기대가 과도했다는 자성이 일고 있었다. 그런 기대가 주가에 선반영됐다는 생각들이 퍼지면서 투자를 자제하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분위기 변화에 따라 시장에서는 피벗 시점이 당초의 올 3월에서 하반기로 연기되고, 연내 금리 인하 횟수도 6회가량에서 3회 정도로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일반화됐다.

뉴욕증권거래소. [연합뉴스자료사진]
뉴욕증권거래소. [연합뉴스자료사진]

미국 상무부의 소매판매 자료가 발표되기 하루 전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가 워싱턴DC의 브루킹스연구소에서 행한 연설 또한 증시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이 연설에서 연준이 기준금리 인하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취지를 수차 강조했다.

그는 미국 경제 상황에 대해 설명하면서 실질GDP가 4분기에 1~2%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실업률은 ​​4% 미만이며,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인플레이션이 지난 6개월간 2%에 육박했음을 강조했다. 내용상 거시경제학자에게 좋은 결과라는 점도 함께 역설했다. 자신이 소개한 내용들이 경제에 좋은 뉴스라는 점을 상기시킨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경제환경이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취지를 뒤이어 밝혀나갔다. 통상 중앙은행은 경기 둔화를 막기 위해 또는 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기준금리를 내리는 예가 많은데 미국의 활기찬 경제상황을 놓고 볼 때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월러 이사는 연설 말미에 그 같은 취지를 보다 뚜렷이 정리했다. 그는 “경제활동과 노동시장이 양호하고 인플레이션이 점차 2%로 낮아지고 있다”고 전제한 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급히, 빠르게 커트(금리 인하)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설 도중 소비가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다음날(현지시간 17일) 발표될 12월 소매판매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주시하겠다던 12월 소매판매는 시장의 기대를 넘어서는 수준을 나타냈다. 이 점이 뉴욕증시의 주요지수들이 이날 일제히 하락한 결정적 이유였다.

상무부가 발표한 12월 소매판매는 계절조정 기준으로 전달보다 0.6% 늘어난 7099억 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시장의 상승률 전망치였던 0.4%를 웃도는 것이었고, 11월 소매판매 상승률(0.3%)의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이 소식을 연준의 긴축 기조 장기화 신호로 이해한 곳은 증시만이 아니었다. 유사한 반응은 자본시장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이날 10년물 국채금리는 한 달여 만에 최고치인 4.12%로 상승했다. 시장금리의 상승은 연준 기준금리 상승을 예감한 결과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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