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정책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심야 시간대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시기를 늦출 뜻을 밝혔다. 하반기 경제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 속출함에 따라 에너지 비용 증가가 기업의 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감안한 결과인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그동안 ‘3차 에너지 기본계획’ 수립의 일환으로 비교적 값싸게 공급되는 심야 시간대 산업용 전기요금을 연내에 인상할 뜻을 밝혀왔다. 그러나 대내외적 여건이 갈수록 악화될 조짐을 보이자 속도 조절에 나설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심야 시간대 산업용 전기요금은 전기 사용량이 적은 시간대임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책정됐다. 그러나 전기의 주 소비처인 대기업들이 심야 시간대 전기를 대거 사용함으로써 에너지 수급에 있어서 낮시간대와의 차별점이 사라지다시피 했다.

이로 인해 에너지 당국은 심야 시간대 전기요금의 연내 인상을 적극 검토한 뒤 실행에 옮기기로 했었다. 우리나라의 심야 시간대 산업용 전기 공급 정책은 세계무역기구(WTO)의 통상 규범상 시비거리가 되기도 했다. 미국의 일부 기업 등은 이를 빌미 삼아 한국 정부가 사실상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해온게 사실이다. 한국의 심야 시간대 산업용 전기요금 정책이 정부 보조금 지급을 금지하는 WTO의 통상 규범에 어긋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방침 전환은 16일 백운규 산업부 장관에 의해 확인됐다. 백 장관은 이날 세종시에서 가진 기자간담회를 통해 “산업용 경부하 요금에 대한 업계의 우려를 충분히 들었다”면서 “그같은 우려를 반영해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연내에 (인상)한다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확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백 장관은 ‘제3차 에너지 기본계획’은 예정대로 올해 안에 수립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 과정에서 전기 요금이 전체 산업과 각 업종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또 삼성전자와 현대제철 등 전기 에너지 소비가 많은 기업들을 거론하며 에너지 효율 향상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덧붙였다.

최근 현안으로 떠오른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서도 백 장관은 탄력적 운용을 요구하는 기업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고 밝히면서 “업종별로 면밀히 분석한 다음 기업들의 애로를 반영하려는 산업부의 목소리를 내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무역 전쟁에 대한 정부의 입장도 소개했다. 그러나 “나름대로의 전략을 갖고 있다”고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대응전략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로 “두 나라(미국·중국) 사이에서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간 우리 정부가 미·중 무역 갈등의 와중에 미국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어온 점을 의식해서 한 발언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백 장관은 우리가 가진 대응 방안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을 시인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의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외국산 자동차에 대한 수입 규제를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대해서도 백 장관은 “미국의 정·재계 인사들도 우리 입장을 이해하고 있으며 한국은 대상이 아닐 것이란 얘기를 한다”라면서 자동차에 대한 미국의 무역확장법 적용은 철강과 비슷한 방식으로 갈 것이란 희망 섞인 예측을 내놓았다. 이와 관련해 뚜렷한 대책이 있다는 점을 확신시키기엔 부족한 발언 내용이었다.

철강 수입규제와 관련, 미국은 당초 한국을 관세 대상국에 포함시켰으나 이후 관세를 매기지 않는 대신 수출 물량을 제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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