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갈등 속에 1년 반을 버텨온 경제 투톱이 동시에 교체됐다. 청와대가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에 대해 같은 비중으로 책임을 묻는 경질 인사를 단행한 셈이다. 새로운 경제 투톱은 김수현 정책실장(전 사회수석)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후보자(전 국무조정실장)이다.

소위 ‘김&장’으로 불리던 두 사람을 동시 교체한데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건 이번 카드가 소득주도성장의 포기와는 무관하다는 점이다. 인사 당일의 청와대 브리핑 내용만 봐도 소득주도성장이 보다 가열차게 추진될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후보자(왼쪽 사진)와 김수현 청와대 졍책실장. [사진 =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후보자(왼쪽 사진)와 김수현 청와대 졍책실장. [사진 = 연합뉴스]

 

청와대는 자주 파열음을 내온 경제 투톱을 이인삼각하듯 호흡이 맞을 사람들로 교체하는데 의미를 둔 것으로 해석된다. 문책의 원인이 정책 오류가 아니라 끊임없는 불협화음에 있었다는 뜻이다.

경제 투톱 교체를 앞두고 정치권 등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누구를 먼저 경질할지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자유한국당의 경우 경제부총리 교체에 반대하면서도 어차피 할 거면 정책실장을 먼저 갈아치우라고 요구했다. 사실상 청와대의 경제정책 추진에 오류가 있었음을 스스로 인정하라는 다그침이었다.

바른미래당도 경제 투톱 인사에 큰 관심을 쏟으며 이런저런 주문을 쏟아냈었다. 큰 줄기는 회전문 인사, 코드인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특히 손학규 대표는 김수현을 지목해 그를 정책실장에 임명하려거든 차라리 그 자리를 비워두라고 주문했다.

주문 취지를 해석하자면, 경제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정책실장 자리에 앉아 큰 그림을 그린답시고 나서면 마찰음만 생기고 선무당 사람잡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였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인사 브리핑에서 “김수현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은 포용국가 설계자로서 큰 그림을 그리고, 실행을 총괄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의 정황을 종합하면 청와대는 경제팀 인사와 관련해 ‘원팀’에 방점을 찍은 반면, 야당들은 명실상부한 경제사령탑으로서의 경제부총리 출현을 요구했다고 정리할 수 있다. 물론 야당들의 요구는 소득주도성장의 파기를 바탕에 깔고 있었다.

문제는 이제부터의 상황 전개다. 당장 예상되는 것은 경제정책을 둘러싼 대립 전선이 보다 뚜렷해지고 충돌음이 한층 커질 것이란 사실이다. 명색으로는 경제부총리가 사령탑이라지만 청와대·정부가 한덩어리가 돼 자유한국당 등 야당들과 기세등등한 싸움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번 인사 이후 - 홍남기 부총리 임명이 무난히 마무리된다면 - 김수현과 홍남기는 한몸처럼 움직일 것으로 전망된다. 인사 발표 당일 청와대는 김수현, 홍남기 두 사람이 원팀으로서 호흡을 맞춰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윤영찬 수석은 “경제는 야전사령탑인 홍 후보자가 총괄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신임 부총리 후보자가 현 정부의 국정철학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지 않아도 홍남기를 두고는 벌써부터 ‘예스맨’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부처 간 업무 조정을 주임무로 하는 국무조정실장엔 적격일지 모르지만 소신 있게 경제정책을 추진해야 할 경제사령탑 감은 아니라는 평가도 들린다.

그런 그가 ‘경제 문제 비전문가’인 김수현이 그려놓은 큰 그림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홍남기는 지명된 뒤 기자들과 가진 첫 간담회에서 문재인 정부 2기 경제팀이 주도하는 소득주도성장은 어떻게 달라질지를 묻는 질문에 명쾌한 비전을 내놓지 못했다. 대신 그는 청와대가 경제팀 인선 브리핑 때 강조한 ‘활력’이나 ‘원팀’ 등을 충실히 되뇌며 강조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그가 연말이면 고용 사정이 개선되고 내년부터는 서서히 정책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던 장하성의 인식을 그대로 계승하지 않았음을 확인한 것이었다. 그는 기자들에게 “경기 침체, 위기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경제가 당장 내년에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을 드러냈다.

그가 민간의 역할을 강조하며 재정의 역할을 부가적인 것이라 말한 점, 눈앞의 빅이슈를 공유경제로 지목하면서 규제혁파를 강조한 점 등도 고무적이다.

2기 경제팀의 성패는 홍남기가 후보자 딱지를 뗀 뒤 경제사령탑이란 명색에 걸맞게 행동해줄 것인지에 달려 있다. 청와대와 호흡을 맞추며 정권 내부에서 잡음을 없애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각종 경제지표로써 실적을 남겨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책실장이 전면에 나서 경제 문제와 관련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책실장은 어디까지나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이자 책사일 뿐이다. 큰 그림을 그리더라도 그 주체는 어디까지나 책사의 보좌를 받는 대통령이어야 한다.

정책실장이 대통령비서실 직제(대통령령)에 규정된 대로만 행동한다면 ‘투톱’이란 말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언론을 향해 ‘투톱’이란 말 좀 쓰지 말라며 볼멘 소리를 할 필요도, 김수현이 공개석상에 나서서 “투톱이란 말이 안 나오도록 하겠다”고 다짐할 필요도 없어지게 된다.

홍남기가 명실상부한 경제사령탑이 될지, 한낱 청와대의 메신저가 될지는 정책 운용 과정에서의 행동에 달려 있다.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에 내포된 분배의 정의 및 기회 균등의 실현이라는 대의를 잃지 않되 혁신성장의 목표를 향해 소신껏 행동하는 것이 홍남기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다. 청와대는 그 과정이 순탄하게 이어지도록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혁신성장이 소득주도성장에 치이고 공정경제에 받히는 불안정한 상황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을 수 있다. 혁신성장이 담보되지 않는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는 모두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분배의 정의도 기회의 균등도 결실이 있을 때에 한해 유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시민 개개인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먹고사는 문제다. 생활 현장엔 흑묘든 백묘든 쥐를 잘 잡아주는 고양이가 최고이듯 정치 이념을 떠나 민생고를 해결해주는 경제정책이 최고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지금 이 순간 한집 건너 한명씩이라는 취업 희망자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일자리다. 청와대가 ‘평화가 경제다’라고 외치는 동안에도 그들에겐 그저 ‘경제가 평화’일 뿐이다.

업다운뉴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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