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특유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숨어서 때를 기다림) 전략일까.

미국 주도의 중국 기업인 체포사건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 관련 대화에 적극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화웨이 설립자의 딸이자 이 회사 주요 임원이 미국의 의뢰로 최근 캐나다에서 체포됐지만, 무역 협상은 협상대로 이어갈 뜻을 내비친 것이다.

이같은 중국의 태도는 화웨이 임원 체포사건과 미·중 무역전쟁을 연계해 바라봄으로써 나타난 국제사회의 우려를 상당 부분 불식시켜줄 것으로 보인다. 두 나라의 대화 재개는 중국이 기업인 체포 사건과 교역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AP/연합뉴스]

투트랙 전략을 먼저 표방하고 나온 측은 미국이다. 중국의 이번 행동은 무역협상은 무역협상대로 이어가자는 미국의 요구를 사실상 수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역갈등 해소를 위한 미국과 중국의 대화는 11일(이하 현지시간) 본격화됐다. 이 같은 사실은 중국 상무부가 이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알렸고,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대화 재개 사실을 보도했다.

이 날 중국의 류허 부총리는 미국의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번갈아 통화했다. 이를 통해 향후 협상을 위한 로드맵과 논제 등을 두고 의견 교환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 교역 당국자들 간의 통화는 지난 1일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미·중 정상이 90일 동안 무역전쟁을 멈추고, 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한데 따라 이뤄졌다. 협상 진행을 위한 구체적 방안과 시간표 등을 논의하기 위한 통화였던 것이다.

특히 흥미로는 점은 이번 통화에서 중국의 경제정책 변경 문제가 논의됐다는 보도 내용이다. WSJ는 11일자 보도를 통해 이같이 전하면서 중국이 ‘중국 제조 2025’ 계획에 대한 변경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제조 2025’는 중국이 제조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2025년까지 취해야 할 행동 강령을 지칭한다. 중국에게는 미국과 겨룰 만큼 힘을 키우기 위해 설정한 장기 첨단산업 육성계획인 셈이다. 이는 흔히 ‘기술 굴기’로 표현되기도 했다.

미국은 무역전쟁을 시작할 때부터 ‘중국 제조 2025’를 타깃으로 삼았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미국의 진정한 목표는 관세 부과 자체가 아니라 중국의 ‘기술 굴기’를 제어함으로써 중국의 패권 야욕을 억제하는데 있었다는 뜻이다.

결국 미국이 ‘투트랙’ 운운하지만, 중국에 대한 관세 공격이나 화웨이 부회장 체포사건 모두 동일한 맥락에서 진행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WSJ는 양국 교역 당국자 간 통화에서는 미국 농산물의 대중(對中) 수출 문제도 논의됐다고 전했다. 이어 류허 부총리가 협상 테이블에 앉기 위해 새해 초 미국 워싱턴을 방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WSJ는 또 중국 최고인민법원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중국이 지적재산권 관련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관련 법 개정안은 최근 의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제출됐으며 내년에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지적재산권 문제 역시 미국이 무역전쟁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다. 중국이 미국 기업들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려는 의지를 드러내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도둑질까지 하고 있다는 게 미국의 인식이다.

중국의 태도 변화를 보여주는 일은 또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언했듯이 중국이 미국산 자동차 수입 때 부과하던 관세를 기존의 40%에서 15%로 대폭 낮추기로 했다는 게 그 것이다. 미국산 자동차 관세 인하는 미·중 무역갈등을 완화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호재가 될 것으로 평가돼왔다.

업적 자랑을 즐기는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그는 이날 오전 트위터에 “매우 중요한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 기다려라”라는 글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달 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한 뒤 트위터 글을 통해 중국이 미국산 자동차 관세를 줄이고 없애는데 동의했다고 미리 알린 바 있다.

미국 상무부 통계에 의하면, 미국은 지난해에 중국에 95억 달러(약 10조7000억원)어치의 승용차와 경트럭을 수출했다.

WSJ는 중국의 최근 움직임은 화웨이 부회장 체포사건이 미·중 대화 국면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은 없을 것이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중국은 이번에 그 이상의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미국에 전달했다고 볼 수 있다. 당분간은 미국의 패권에 정면 도전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겠다는 게 핵심이다. 원대한 야욕을 추스린 채 현실적인 이익을 취하며 때를 기다리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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