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이 연일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공격에 나서고 있다. 기준금리 결정 시기가 임박해올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엔 그 강도가 이전보다 훨씬 강해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물론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까지 나섰다. 더 이상 금리 인상을 단행하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연준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연준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총 여섯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물론 데이터에 입각해 이뤄진 연준의 독자적 결정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억울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수출과 내수 증대를 통해 경기를 활성화시키려면 저금리 정책이 뒷받침되어 주어야 유리한데 연준이 ‘마이 웨이’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 = 연합뉴스]
미국 연방준비제도 건물 모습.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유세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약(弱)달러 정책을 선호한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시중 유동성 공급이 넉넉해야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신념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그같은 신념은 달러가 기축통화라는 점과도 무관치 않은 듯하다.

연준은 19일(이하 한국시간)부터 이틀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열고 통화정책을 논의한다. 이틀째인 20일 새벽 무렵엔 기준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해 발표하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매체라는 폭스뉴스에 등장해 금리인상 자제를 당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이 아니지만 연준 독립성 보장을 위해 금리정책에 대해 가급적 공개 발언을 삼갔던 역대 대통령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FOMC 회의가 임박한 18일 트위터를 통해 또 한번 기준금리 인상 자제를 촉구했다. 그는 실질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없고, 바깥 세계는 폭발하고 있으며, 파리는 불타고 있는데다 중국도 내리막길로 들어섰다는 등 화려한 수사를 동원한 표현으로 지금은 금리 인상의 적기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의 표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연준은 금리를 올릴 게 아니라 그 반대의 선택을 해야 할 것처럼 여겨진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정책국장도 트럼프 대통령을 거들고 나섰다. 나바로 국장은 이날 CNBC 방송에 출연해 현재 미국에 인플레이션 현상은 없다고 강조하면서 “연준이 금리를 올리려는 유일한 논거는 백악관으로부터의 독립”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는 나쁜 논거”라며 “연준이 할 일은 데이터를 살펴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은 곧, 경기 과열을 나타내는 지표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연준이 오직 중앙은행 독립성이란 가치를 지킨다는 제스처를 취하기 위해 백악관 의도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려 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금리 인상 흐름을 한번쯤 되돌아보게 하는 요인들도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서 언급한 것 외에 뉴욕 증시의 3대 지수가 이번주 들어 폭락했고, 전미주택건설협회가 발표한 12월 주택시장 지수는 전월보다 하락했다. 전문가들의 전망치는 61이었으나 실제 지수는 56으로 나왔다. 전달의 60보다도 저조한 수치다.

현재로서는 이렇다 할 투자심리를 자극할 만한 소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외환시장과 채권시장, 주식시장 등이 FOMC 회의를 주목하며 혼조세를 보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시장의 대체적 전망은 이번에 연준이 기준금리를 다시 한번 인상할 것이라는데 모아져 있다. 예상대로 0.25%포인트 인상된다면 미국의 기준금리는 2.25~2.50%로 결정된다. 지표로만 보아도 연준이 이번에 금리 인상을 단행할 이유는 충분하다는 견해도 많다.

따라서 시장의 더 큰 관심은 연준이 이번 회의를 통해 내년의 미국 경제에 대해 어떤 전망을 제시할지, 통화정책과 관련해 완화적인 발언을 내놓을지 등에 쏠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쪽으로든 속단은 금물이다. 금리 정책을 논의했던 이전의 FOMC 회의 전후와 달리 지금은 속도조절론이 보다 많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역시 현재의 미국 기준금리가 중립금리 ‘바로 밑’에 와 있다고 말함으로써 금리 인상의 속도 조절 필요성을 인정했다. 그만큼 연준으로서도 통화정책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이전보다 조심스러워졌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종합하면 백악관의 요란스러운 간섭은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도 있다. 중립금리 수준에 대한 논의가 분분한 상황에서는 자존심 강한 FOMC 위원들의 미세한 감정 변화가 통화정책 방향을 바꾸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