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 ‘SKY 캐슬’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마지막 회 방영을 불과 몇 시간 앞둔 1일 오전 현재, ‘SKY 캐슬’이 지난 방송분 시청률이자 케이블 TV 사상 역대 최고 기록인 23.2%(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를 넘어설 것이란 기대는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교육의 문제점을 비꼰 이 드라마의 인기는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교육열과 무관하지 않다. 극중 서울대 의예과를 꿈꾸던 우등생 강예서(김혜윤 분)의 책상은 ‘예서 책상’이란 이름으로 틈만 나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렸고, 240만원이 넘는 가격에도 품절을 맞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우리나라 사교육비가 세계 최고 수준,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란 사실은 누구나 안다. 다섯 살이 넘으면 연간 기백만원이 드는 영어 유치원을 다니고, 초등학교 때부터 정해진 사교육 코스를 밟으며 월급의 많은 비중을 아이에게 투자하는 일이 유독 필자 주변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닐 것이다.

[사진 = JTBC 제공/연합뉴스]
[사진 = JTBC 제공/연합뉴스]

지난해 3월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7만1000원으로 나타났다. 2016년 25만6000원에 비해 1만5000원(5.9%) 증가한 수치다. 사교육비 지출은 수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2년 당시 22만원 수준에서 꾸준히 올라 2017년 27만원을 넘어섰다.

특히 가구의 월평균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사교육비 지출과 참여율이 높았는데 월평균 소득 700만원 이상 가구의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5만5000원, 200만원 미만인 가구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9만3000원으로 조사됐다.

분명 적은 비중은 아니지만, 해당 수치에 공감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월평균 소득 200만원이라면 모를까, 700만원 수준의 부모가 고작 45만원을 사교육비로 쓴다는 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로 들릴 뿐이다.

하지만 통계청의 수치도 자세히 살피면 조금 달리 보인다. 사교육 참여 학생 중 월평균 사교육비로 50만원 이상 지출한 학생은 18.4%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이는 서울 지역에서 급격히 올라갔다. 서울깍쟁이들은 셋 중 하나(32.0%)가 50만원 이상을 사교육비에 썼다. 읍·면지역에서 고작 열셋 중 하나(7.6%)가 반백만원을 쓰는 것과 대비되는 수치다.

글로벌 컨설팅 기관 매킨지의 보고서 수치는 좀 더 현실적이다. 2014년 매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최상위 계층은 사교육에 매달 400만원 정도를 쓴다.

이 정도 지출이면 ‘SKY 캐슬’이 떠오를 법하다. 극 중에선 학생들의 성적을 좌지우지하는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 분)이 슈퍼 갑이다. ‘김주영 쌤’은 비서 조선생(이현진 분)에게 고가의 아파트를 어렵지 않게 선물할 정도로 부를 축적했다. 매월 1인당 400만원에 관리하는 학생 수를 두 자릿수 초반으로만 잡아도 현실과 마냥 동떨어진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처럼 중산층도 무리하게 교육에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을 개념화해 널리 알렸다. 그의 대표 저서 ‘구별짓기(La Distinction: Critique sociale du jugement, 1979)’에 따르면 문화자본은 사회적으로 물려받은 계급적 배경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지속적인 문화적 취향을 의미한다. 부르디외는 문화자본이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사회적 위치를 반영하는 하나의 지표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엘리트 집단은 고급문화를 대중문화와 구별짓는다. 문화의 위계는 곧 계급 위계가 되고 이를 영속화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듦으로써 엘리트의 위치는 더욱 공고해 진다. 체득된 문화와 모방된 문화는 엄연히 다르다. 다른 조건, 다른 환경에서 형성된 특정 집단의 문화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적지 않은 대중들, 경제적 중산층들은 엘리트 집단의 문화를 모방하는 속성을 보인다. 2016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07년부터 월소득 600만원 이상 가정과 200만원 미만 집단 사이에 사교육비 격차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저소득층의 사교육비가 상승했다는 점이다. 격차를 좁힌 건 고소득층의 줄어든 소비가 아니라 저소득층의 무리한 소비였다.

드라마 ‘SKY 캐슬’에는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산다. 대학병원 의사와 로스쿨 교수를 아버지로 둔 아이들이 왕이 되길 꿈꾸며 왕자와 공주처럼 자라난다. 천분의 일이란 수치에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지위가 모두 포함돼 있다.

대한민국 상위 0.1%가 아닌 우리 입장에선 학력이 경제력을 보장해주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2013년 매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고졸 취업자와 대졸 취업자 중 순수현재가치(純粹現在價値, The net present value)가 높은 쪽은 고졸 취업자로 나타났다. 학력이 곧 경제력을 의미했던 6·25 세대와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걸 알리는 의미 있는 통계다.

실제로 우리는 주변에서 학력 인플레 사례를 어렵잖게 만날 수 있다. 필자도 스스로 그 같은 사례의 일부라 여기며 살고 있다. 구체적 사례로 석·박사 지인들은 자리를 잡지 못해 수년간 상아탑 주변만 어슬렁거렸다. 그들 중 박사 과정을 마치거나 학위를 얻은 뒤에도 안정적으로 직장을 확보한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공부가 밥 먹여주는 시대가 아니다. ‘SKY 캐슬’은 그야말로 하늘 위의 성이다. 대한민국 상위 0.1%가 아니라면 아이를 키우는 30~50대 부모들은 삶에 있어서 무엇이 더 가치 있는 투자인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의 준말, 일과 삶의 균형)’을 외치는 대다수 젊은이들에게 중요한 건 당장의 행복이다. 경제력과 무관한 학문적 깨달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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