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 갈등이 다시 고조되는 모양새를 띠기 시작했다. 미국의 격한 반응이 표면적이고도 직접적인 원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에서 행한 유세를 통해 “그들(중국)이 합의를 깼다”며 공공연히 중국을 비난했다.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나온 그의 격한 반응은 아직 중국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약속을 받아내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미국의 불만을 대변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뿐이 아니다. 블룸버그 통신 보도에 의하면 미 무역대표부(USTR)는 같은 날 관보를 통해 10일부터 중국산 수입품 2000억 달러(약 235조원)에 대한 관세를 기존 10%에서 25%로 올리겠다고 예고했다. 미·중 협상을 이끌고 있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는 관세 인상 시점이 워싱턴 시간으로 10일 0시 1분이라고 밝혔다. 강경파인 라이트하이저 대표가 트럼프 대통령과 호흡을 착착 맞춰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반면 라이트하이저 대표에 비해 온건파로 평가되는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중국이 정상 궤도로 다시 돌아간다면 관세 부과 계획을 재고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당연한 말인 듯 보이지만 므누신 장관의 발언은 미국의 대중 협상전략이 강온 양면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보여준다. 강경파 인사를 앞세워 으른 뒤 다른 인사를 통해 달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소위 ‘굿캅 배드캅’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흐름을 종합해볼 때 미·중 협상은 타결을 위한 막판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강한 압박은 중국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마지막 남은 힘을 모두 쏟아붓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가능한 한 판정승이 아니라 KO승을 거두려는 의도의 표현이라 설명할 수도 있다.

반대로 중국은 중국대로 최대한 많은 것을 지키며 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해 남은 힘을 다해 버티기에 들어갔다고 해석할 여지가 많다. 한동안 워싱턴 방문 협상단에 류허 부총리를 포함시키지 않을 것처럼 제스처를 취하며 미국에 저항한 것이 단적인 예다. 그러나 결국 중국은 협상 일정을 하루 늦춰가며 류허 부총리를 미국에 보내기로 했다. 이 일로 당초 8~9일로 예정됐던 워싱턴 고위급 협상은 하루씩 순연돼 10일 마무리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미·중 협상이 돌연 새로운 난관에 봉착했다고 판단하기엔 이른 감이 있다. 양측의 힘겨루기가 절정에 이르렀다는 것은 타결이 임박했다는 해석으로 연결될 여지를 남기기도 한다.

미국 뉴욕 타임스(NYT)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미국은 지금 중국이 합의 내용을 지킬 확고한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불만을 노골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중국 진출 미국기업에 대해 기술이전 강요 등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이를 보장할 법적 근거 마련에는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법률 개정을 통해 약속 이행 의지를 보이라는 미 측 요구에 중국은 행정조치 등 하위 규제를 거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8일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협상을 통해 이렇다 할 합의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시장에서는 협상 타결보다는 불발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골드만삭스의 앨릭 필립스 애널리스트는 미국이 예고대로 10일부터 관세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60%나 된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행간에서는 류허 부총리 일행이 미국에 도착하기 전 보따리를 보다 크고 알차게 채우라는 강한 메시지가 묻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까지 장기간 셔틀 협상이 이어져왔고, 최근 베이징 회담 직후 나온 미 측 협상단의 반응이 긍정적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지금의 진통이 옥동자 탄생을 위한 산통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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