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31일 시장의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1.75% 그대로 유지했다. 시장의 관심사는 진작부터 금리 자체보다 방향성에 모아져 있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소수의견이 나올지 여부가 주된 관심사였다는 의미다. 소수의견 중에서도 금리 인상 주장이 아니라 금리 인하 주장이 있을지가 더 큰 관심사였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날 회의에서 만장일치 의견이 나왔다면 다음 번 금통위 회의(7월 18일)에서도 금리 동결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진다. 반면 이날 소수 의견이 제시됐다면 방향성에 변화가 일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소수 의견은 인상쪽일 수도 인하쪽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수 의견이 나왔다면 인하쪽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지금처럼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거론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 그 배경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최근 들어 생산과 투자가 다소 회복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지만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을 정도는 아니다. 더구나 수출과 고용은 여전히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0.3%(전 분기 대비)를 기록한 것은 금리 인하 주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결정적 요소라 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장기 갈등이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는 상황 역시 금리 인상보다는 인하를 자극하는 요소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의 특성상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 증대는 금리 인상을 억제하는 강력한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금리 인하를 선뜻 결정하기 어렵게 하는 요소도 만만치않게 널려 있다. 우선 현재의 기준금리가 충분히 완화적인 수준이라는 한은의 인식이 그 중 하나다. 이는 이주열 총재가 지난달 “금리 인하를 검토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한데서 잘 드러난다. 이 총재를 필두로 한은은 지금까지 같은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한은이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이 상저하고(상반기엔 낮고 하반기에 높아짐) 현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점도 금리 인하를 점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금통위 위원들이 이런 신념을 유지한다면 금리 인하 분위기는 형성되기 어려워진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금리 인하의 걸림돌은 환율이다. 최근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 원/달러 환율은 정부 당국이 구두 개입을 해야 할 정도로 상승 압력이 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환율 상승과 그로 인한 외화자금의 한국 시장 이탈을 더욱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과 기준금리 차가 더 벌어지는 것 역시 한은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한은이 금리 결정의 딜레마에 빠진 것을 두고 이런 상황을 자초했다는 견해도 제기된다. 진작 금리 인하를 단행했어야 했는데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다음번 금리 결정까지 한달 반 정도의 시간을 벌었지만 한은의 고민은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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