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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옥의 나이스한 세상] 연이은 ‘슈퍼예산’…중요한 건 適財適所
[박해옥의 나이스한 세상] 연이은 ‘슈퍼예산’…중요한 건 適財適所
  • 박해옥
  • 승인 2019.09.0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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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년 연속 증가율 9%대의 예산안을 확정했다. 올해 9.5%에 이어 내년 예산의 증가율을 9.3%로 잡은 것이다. 지난달 29일 각의를 통해 확정된 정부 예산안은 513조5000억원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앞서 기자들에게 밝혔던 대로다. 홍 부총리 스스로 말했듯이 9% 초반은 최근 10여년래 가장 큰 예산 증가율이다.

현 정부 들어 확연히 빨라진 예산 규모 증가의 속도는 가속도까지 붙으면서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몇 년만 돌아봐도 그 증가 추세가 얼마나 가파른지 알 수 있다. 전년 대비 연도별 예산 증가율(본예산 기준)은 2015년 5.5%, 2016년 2.9%, 2017년 3.7%, 2018년 7.1%, 2019년 9.5% 등이다. 5% 안팎을 맴돌던 예산 증가율이 문재인 정부 들어 두 배 정도로 뛰었음을 알 수 있다. 예산의 절대 규모가 커진 것까지 감안하면 액수 기준 증가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진보 이념을 추구하는 만큼 문재인 정부가 큰 정부를 지향하리라는 점, 복지 지출을 이전보다 크게 늘리려 할 것이란 점 등은 예견된 일이었다.

예산 증가율 상승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세수만 뒷받침되어 준다면 오히려 반길 일이다. 올해의 경우엔 세수가 기대 이상으로 호조를 보이는 바람에 두 자릿수 가까이 증가한 예산을 감당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은 워낙 세금이 잘 걷히다 보니 정부는 재정을 확장적으로 운용하면서도 건전성 훼손을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있었다.

여당에서는 기획재정부가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인다며 불만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나왔다. 재정을 더 적극적으로 확대해 운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방어적이란 뜻이었다. 하지만 홍 부총리도 지적했듯이 지금까지 정부가 재정을 긴축적으로 운용한 것은 결코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정부가 재정을 적극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금이 예상보다 잘 걷힌 덕분에 결과적으로 수지 균형이 맞아떨어져 왔을 뿐이다. 정부가 지난해에 세입 추계를 잘못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균형이 맞아가고 있을 뿐, 사실은 적자를 감수할 요량으로 재정을 운용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내년엔 사정이 달라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세금이 예산 증가 속도를 감당할 만큼 늘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얘기다. 경기 침체와 반도체 수출 부진, 부동산 시장 위축 등에 의해 법인세 및 양도소득세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점이 주요 원인이다. 정부도 이를 부인하지 않고 있다. 이를 알고도 슈퍼예산을 편성한다는 것은 적자 국채 발행을 각오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정부는 내년 예산이 513조5000억원으로 확정되는 것을 전제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39%대 후반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세수 상황에 따라 채무 비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40%선을 넘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추경안 확정치 기준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올해 37.2%다.

문재인 대통령이 “40%의 근거가 뭐냐?”는 말로 당국의 보다 적극적인 재정 운용을 자극했지만 이 선을 넘기는 것은 위험하다는 시각이 여전히 많다. 여당 일각에서는 외국의 예를 거론하며 우리의 국가 채무 비율이 낮은 편이라 주장하지만 물정 모르는 소리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우리가 미국이나 일본, 유럽 주요국 등을 비교 대상으로 삼는 것부터가 잘못이다. 국가 채무의 개념에서도 우리와 그들 사이엔 괴리가 있다.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이 명목상 집계와 달리 사실상의 국가 부채라 할 공기업 부채다.

잘 드러나지 않는 속사정은 또 있다. 국가 채무 중에서도 국민들의 세금 부담으로 메워야 하는 적자성 채무의 비중이 이미 60%에 육박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예산결산심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당시 국가 채무에서 적자성 채무가 차지하는 비중은 56.8%였다. 적자성 채무는 박근혜 정부 때부터 논란이 돼온 골칫덩이다.

환율안정을 위한 국채 발행 등에서 비롯된 금융성 채무가 빚을 갚을 대응능력을 지니는데 반해 적자성 채무는 오직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쥐어짜내야만 갚을 수 있는 대상이다. 당대에 해소하지 않으면 그대로 후대의 부담으로 전이되는 악성 채무다.

적자성 채무는 앞선 박근혜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를 주장하면서 점차 나빠지기 시작했고 문재인 정부 들어 그 흐름이 빨라졌다. 이를 키운 지출 항목들 중엔 야당으로부터 ‘총선용’이란 비판을 받는 것들도 적지 않다. 그러면서도 이 지출 항목들은 재정 운용상 경직성이 강해 경제 사정이 악화되더라도 줄이기 어렵다. 사회복지성 지출이나 공무원 증원에 의한 인건비 추가 지출 등이 대표적 항목들이다.

국회 보고서는 우리나라 국가 부채의 연평균 증가율이 35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여섯 번째로 높다는 사실도 함께 지적했다. 정부가 재정 건전성 유지를 위해 신중한 자세를 유지해야 함을 상기시킨 것이다.

최근 세계 경제가 급격히 어려워지면서 재정 확대 정책은 하나의 큰 흐름이 되어가고 있다. 이는 확장적 재정 운용이 우리만의 일도 아니고, 그만큼 재정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임을 말해주는 현상이다. 저금리 시대를 맞아 통화정책의 효용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확장적 재정 운용의 필요성을 키우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슈퍼예산 편성은 우려스럽지만 불가피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예산 증액의 취지를 제대로 살려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인사에서 적재(適材)를 적소(適所)에 써야 하듯 예산 운용에서는 적재(適財)를 적소에 투입하는 게 중요하다. 즉, 증액된 예산이 최대한 경제를 살리는 불쏘시개가 되도록 용처를 엄히 선정해 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게 납세자들에 대한 정부의 기본적인 예의이자 도리다. 이를 묵살한 채 슈퍼예산에 기대 일말이나마 정치적 목적으로 선심성 재정 운용을 할 요량이라면 결과는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수밖에 없다. 책임 있는 정부라면 삼가도 또 삼가야 할 일이다.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