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유명무실해졌던 민간택지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가 부활했다. 정부가 핀셋 지정을 했다며 6일 발표한 대상 지역은 서울 강남 4구와 마포·용산·성동(마·용·성)에 속한 27개 동이다. 이들 지역은 정부가 아파트 신규 분양으로 인해 주변 집값이 동반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곳들이다. 서울 27개 동엔 강남 4구의 22개 동과 마·용·성의 4개 동, 그리고 영등포구 여의도동이 포함됐다.

반면 그간 주목받았던 투기과열지구인 과천과 분당 등 수도권 지역은 이번 지정에서 모두 제외됐다.

서울의 경우 문재인 정부가 지난 10월 주택법 시행령을 개정함에 따라 전역이 분양가 상한제 지정 대상에 포함된 바 있다. 따라서 이번에 지정에서 제외된 곳들도 언제든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곧바로 분양가 상한제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과천 등도 마찬가지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하지만 제도의 재정비 이후 처음 실시하는 이번 조치가 과연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다. 적지 않은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가 아무리 ‘핀셋 지정’을 한다 한들 분양가 상한제가 풍선효과를 일으키면서 장기적으로는 전반적인 아파트 가격 상승을 부추길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민간택지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가 자본주의 경제원리에 위배될 뿐더러 효과적이지도 않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정부가 특정 제품에 대해 시장가격을 통제하면 당장은 값이 떨어질 수 있지만, 곧 생산이 줄면서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결국 가격이 폭등한다는 게 경제학의 기본 논리다. 시장 가격은 오로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는 게 고전적인 경제학 이론이라는 뜻이다.

민간택지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적용이 현실화되기 이전부터 아파트 시장에서는 이미 그 같은 움직임이 감지됐다. 서울과 같은 고밀도 지역에 아파트를 추가 공급할 거의 유일한 수단인 재개발·재건축 움직임이 주춤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초과이익 환수제 등으로 사업성이 떨어진 마당에 새로 적용되는 분양가 상한제는 특히 아파트 재건축 사업에 치명적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서울 강남 같은 곳에서는 초과이익 환수금까지 지불해가며 재건축을 해놓으면 이익은 엉뚱하게도 당첨된 현금부자들이 가져가는 구도가 만들어진 탓이다.

재건축·재개발 단지가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아 아파트를 일반분양할 경우 예상되는 분양가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기준 분양가보다도 훨씬 낮다. 국토교통부 이문기 주택토지실장은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을 경우 아파트 분양가는 HUG 기준 가격보다 최대 10% 정도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파트 분양시엔 HUG가 분양보증 제도를 무기로 내세우며 사실상 분양가를 통제하고 있다. 현행 규정상 20가구 이상의 아파트를 선분양하려면 반드시 HUG의 분양보증을 받아야 한다.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사업자는 입주자 모집공고를 내지 못한다.

재개발을 앞둔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 [사진 = 연합뉴스]
재개발을 앞둔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 [사진 = 연합뉴스]

이로 인해 그러지 않아도 건설사들과 아파트재건축사업조합 등은 지금의 분양보증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그런데 분양가 상한제를 통해 이보다 더한 억압이 가해지게 됐으니 최소한의 사업성조차 보장받기 어렵게 된 셈이다. 이는 재건축 추진 계획을 줄줄이 미루거나 포기하는 현상을 낳고 있다.

분양을 포기하는 단지들이 규제가 해제되거나, 길게는 정권이 바뀌어 정책 변경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분양 대신 임대 방식을 취하려는 곳도 나타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서울 여의도의 ‘브라이튼 여의도’이다. 이 단지는 450여 가구에 대한 분양을 포기하고 대신 이를 임대로 돌리는 방안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같은 아파트 단지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 매매시장에서 그만큼 신축 아파트 공급이 줄어들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그러지 않아도 몸값이 귀해진 신축 아파트의 매매 가격을 더욱 끌어올리고, 이것이 다른 중고아파트 가격까지 견인하는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

이에 비하면 현금 부자들의 ‘로또 당첨’ 문제는 오히려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

한편 이번에 대상 지역에 포함됐지만 6개월 유예를 부여받은 개포주공 1단지와 4단지, 서초구 신반포 15차 등은 내년 4월까지 분양신청에 돌입하기 위해 속도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주택법 시행령이 공포된 지난달 29일을 기준으로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재건축 단지에 한해 내년 4월까지 상한제 적용을 유예하기로 했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