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지난해 성장률 실적이 공개됐다. 정부 입장에서 보자면 지난 한 해 동안 지은 농사의 성적표를 받아든 셈이다. 결과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부실 농사라 할 수 있다. 알찬 수확 대신 속이 텅 빈 쭉정이만 잔뜩 거둬들인 꼴이었다. 외관상 수확도 부실했지만 실속은 그보다 더 못했다는 뜻이다.

22일 한국은행은 지난해의 연간 및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속보치를 발표했다. 속보치란 해당 연도나 분기의 마지막 일부 기간 동안의 자료가 모두 반영되지 않은 가운데 미리 집계되는 자료를 말한다. 따라서 추후 발표될 잠정치나 확정치에서 다소 변화가 생길 여지를 안고 있다. 하지만 전례로 보면 그럴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오차가 생기더라도 유의미한 수준이 아닌 경우가 많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발표 결과 지난해 우리나라의 GDP 성장률은 2.0%였다. 4분기 성장률(전기 대비)이 1.2%를 기록하며 예상보다 높은 수준을 나타낸데 힘입은 결과다. 분기 성장 1.2%는 사실 깜짝 놀랄 만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 수치는 2017년 3분기에 1.5% 성장을 달성한 이후 9개 분기 만에 나타난 최대 성장률이다. 지난해의 전기 대비 분기별 성장률은 차례로 -0.4%, 1.0%, 0.4%, 1.2%를 기록했다.

그간 민간에서는 지난해 4분기 성장이 0.9% 수준을 넘기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한은은 당초 지난해 성장률 2%선 달성을 위해서는 4분기 성장률이 전기 대비로 최소한 0.93%는 넘겨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4분기 성장률은 예상 외로 높게 나타났다. 한은 발표 자료 내용을 뜯어보면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정부가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며 성장률을 무리하다 싶을 만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것이 원인이었다.

이를 입증해주는 대표적 자료가 4분기 들어 유난히 높아진 정부 부문 성장 기여도다. 그 수치가 무려 1.0%포인트나 된다. 이는 4분기 성장률 1.2%를 달성하는데 있어서 정부가 83% 이상의 역할을 수행해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민간은 거의 성장에 기여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연간 기준 성장률의 내부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연간 성장률 2.0%에 대한 부문별 기여도를 보면 정부 부문이 1.5%포인트, 민간 부문이 0.5%포인트를 책임진 것으로 나타나 있다. 성장률 달성에 있어서 작용한 정부의 역할이 75%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결과를 보면 지난해 우리 경제는 정부 주도 성장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왔다는 분석을 제시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지적하면, 재정에 의해 그나마의 성장이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수단은 건설투자였다. 특히 4분기 들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재정 집행률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에 적극 나서면서 건설투자를 급격히 끌어올렸다. 그 결과 건설투자는 지난해 4분기에만 6.3%의 성장률을 보였다. 근래에 보기 드문 정도의 성장률이었다. 더구나 직전 분기의 건설투자 증가율은 마이너스 6.0%였다. 지난해 1~2분기의 건설투자 증가율은 각각 -0.8%와 1.4%로 집계됐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이렇게 해서 2%선에 꿰어맞추듯 만들어진 성장률이지만 이 수치 자체도 최근의 성장률 흐름 속에서 보면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직전 연도에 비해 성장률이 0.7%포인트나 떨어졌고, 앞선 몇 년 동안의 성장률 추이와 비교해보더라도 형편 없는 수준까지 추락했다는 점이 그 배경이다. 2014~2018년의 연간 성장률은 차례로 3.2%, 2.8%, 2.9%, 3.2%, 2.7%였다.

지난해 성장률은 세계적 금융위기의 여파가 국가경제를 휘청이게 했던 2009년의 0.8% 성장 이후 가장 낮은 집계치다. 성장률 2.0%는 맨 처음 한은이 제시했던 전망치 2.9%와도 너무 거리가 멀다. 외부 변수의 출몰에 따른 예측 능력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그 차이가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한은이 추산하는 우리의 잠재성장률 수준(2.5~2.6%)과 실제 이룩한 성장률이 지나치게 큰 격차를 보인 점도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성장 실적 부진과 관련, 한은 이주열 총재는 미·중 무역분쟁이 지난해 우리 성장률을 0.4%포인트 갉아먹었다고 분석한 결과를 소개했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인정해도 2.0% 성장이란 결과를 합리적 결과라 이해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자료상 나타난 성장 부진의 원인은 위에서 일부 언급됐듯이 민간 부문의 성장 기여 부진이다. 이는 곧 민간 부문 의존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해야 함을 시사한다. 재정 지출에 의한 성장은 지속가능하지 않을뿐더러 바람직한 방법도 아니다. 정부 주도로 SOC 건설사업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민간 부문에서 자발적 건설투자가 늘고 기업들이 시설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전제는 말할 것도 없이 정책에 대한 재점검이다. 그래야만 재정을 무리하게 집행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레 내수도 살아나게 된다. 수출이 외부 환경의 영향으로 부진에서 속히 회복되기 어려운 시점일수록 내수 증대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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