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무차별적인 부동산 수요 억제 정책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심지어 여당 내부에서도 이견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아직은 4월 총선을 의식한 일부 지역 의원들에 국한된 얘기지만 여당 정치인들이 집단으로 목소리를 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사건이라 할 만하다.

목소리의 주인공들은 이른 바 여당 내 ‘수도권 험지 모임’ 소속 의원들이었다. 김병욱(성남 분당을), 김병관(성남 분당갑), 전현희(서울 강남을), 최재성(서울 송파을), 황희(서울 양천갑) 의원과 서울 서초을 출마를 예고한 박경미(비례대표) 의원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최근 모임에서 적어도 1가구 1주택자들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부과되는 정책적 부담을 완화해줄 필요가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사실은 김병욱 의원이 연합뉴스 등과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공개됐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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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의원의 전언에 따르면 이들 의원은 투기지역이나 과열지구 내 무주택자나 1주택자 등에 대해서는 정부 대책에 따른 규제를 완화해줄 필요가 있다는데 공감대를 이뤘다. 김 의원은 현재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과도한 면이 있다는 인식 하에 이들에 대한 규제는 투기와 분리해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의원은 또 서울 아파트의 중위가격이 9억원을 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9억원 이상의 아파트를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이를 수정·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1주택자에 대해 매겨지는 과도한 종부세 부담을 덜어주고, 9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대출 규제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종부세 부담 완화는 1주택자의 보유기간별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출 규제 제도는 무주택자나 1주택자에 한해 주택담보대출 비율(LTV)을 현행(20%)보다 높여주는 쪽으로 손질하자는 것이다.

김 의원은 “서울 아파트의 중위가격이 9억을 넘겼다”면서 서울 아파트의 절반 이상을 규제 대상으로 삼는 것이 국민 정서상 수용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9억원 이상 주택에 대한 대출 규제와 관련해서는 “원금과 이자를 상환할 능력이 있는 사람조차 대출 규제를 받게 되면 현금이 충분한 사람만 집을 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부동산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그간 수도 없이 거론됐던 내용들이다. 그간 청와대의 기세에 눌려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속앓이를 하던 여당 내 일부 의원들이 상황이 다급해지자 비로소 입바른 소리를 하기 시작한 셈이다.

총선이란 목전의 이벤트가 아니더라도 이들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합리성을 지닌다. 김 의원도 지적했듯이 서울 아파트 소유자 절반 이상을 투기꾼 취급하는 현재의 부동산 정책은 누가 봐도 문제가 있다. 징벌적 규제의 기준선이 9억원으로 정해지는 바람에 정책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너무도 많은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KB부동산 리브온의 집계에 따르면 올해 1월을 기준으로 할 때 서울 아파트의 중위가격은 9억1216만원을 기록했다. 표본주택을 조사 대상으로 삼아 집계한 결과이긴 하지만 서울 아파트의 절반 이상이 9억원 이상이라는 추론을 가능케 하는 내용이다. 중위가격이란 평균가격과는 다른 개념으로 서울의 아파트들을 가격 순으로 나열했을 때 딱 중간에 위치하는 주택의 가격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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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주택 가격 9억원을 각종 규제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서울 아파트의 절반 이상을 투기의 결과물로 본다는 것과 같다. 서울 외 투기과열지구 내 9억 이상 아파트 소유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해당 아파트의 소유자들, 특히 1주택자들 중 다수는 평생 허리띠를 졸라맨 채 하우스 푸어로 살아온 이들이다. 또 이들 중 상당수는 주택을 거주 수단인 동시에 중요한 안전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수요자들로 보아야 할 이들까지 투기꾼으로 몰아가는 것이 과연 시민 정서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김 의원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 국민들 마음 속에는 예부터 ‘집 한 채는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정서가 자리하고 있다. 주거 복지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문화를 일거에 흔들고자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현재 9억원 이상 주택은 고가주택이라는 이유로 각종 과세 및 대출 규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종합부동산세의 경우 시세가 아니라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삼고 있긴 하지만 역시 9억원을 중요한 기준선으로 삼고 있다. 이 선을 넘으면 1주택자라 할지라도 종부세를 내야 한다. 고가 주택 축에도 들지 못하는 주택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산세 외에 추가로 미실현 이득에 대해 이중으로 보유세를 내고 있는 것이다.

현행 고가주택 기준은 1999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당시 소득세법상 고가 주택 기준선은 6억원이었다. 이 기준선은 2008년 9억원으로 한 차례 상향조정됐으나 이후 10년 이상 이어져오고 있다. 참고로 KB부동산 집계에 의하면 2008년 말 현재의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4억8084만원이었다.

결국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지금의 절반 수준이던 10여년 전의 고가주택 기준을 지금 시점에서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이고 보니 곳곳에서 불만과 아우성이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들 중엔 평생 절약해가며 집 한 채 겨우 마련한 뒤 그것을 기반으로 노후 생활을 영위하려던 은퇴자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그들로서는 평생에 걸쳐 이룬 소박한 꿈이 무자비하고 무차별적인 정부 정책에 의해 깨져버릴 위기를 맞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은퇴자 여부를 떠나 9억원 이상 아파트 한 채를 소유한 이들은 결코 부자가 아니다. 수십년 동안 저축한 돈에 대출금을 보태 집을 장만한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에게 부유세 성격의 각종 보유세를 중과하고 대출 등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친 감이 있다. 특히 이들에 대한 증세는 소비를 위축시키는 부정적 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현재 시행중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엔 무리한 부분이 적지 않다. 당장 해결해야 할 것이 고가 주택 기준선을 현실에 맞게 상향조정하는 일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해왔듯이 보유세 부담을 마구 늘려 집값을 잡겠다는 현 정부의 편의적·즉흥적 발상은 장기적으로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소비만 위축시킬 위험성을 안고 있다. 중위소득자들의 고통을 덜어줄 보다 효율적이고 세련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아쉽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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