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이 뒤늦게 여신관리 시스템 개선에 나섰다. 윤종원 행장의 낙하산 논란이 겨우 잠잠해지나 싶었는데 이번엔 76억원 규모의 ‘셀프대출’ 사건이 행내에서 벌어진 탓이다.

셀프대출 사건이란 지난 달 말까지 기업은행 차장급 직원으로 근무했던 A씨가 자신의 부인과 어머니 등 친·인척들에게 총 75억7000만원을 대출해준 사건이다. 대출은 부동산을 담보로 올해 상반기까치 4년여 동안 총 29회에 걸쳐 진행됐다. 이렇게 될 때까지 기업은행은 그 같은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것으로 짐작된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A씨는 대출받은 돈으로 수도권 일대의 부동산을 다수 매입했고 그 결과 수십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둔 것으로 전해졌다. 뒤늦게서야 이 사실을 발견한 기업은행은 A씨를 면직처리하고 대출업무 관련 결재라인 선상의 다른 직원들에 대한 인사조치를 취했다.

기업은행은 A씨에 대한 법적 처리도 고심 중인 상태에 있다. 일단 형사고발한다는 방침은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남은 과제는 어떤 혐의를 적용할지에 모아져 있다. 은행 측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업무상 배임과 관련해 형사고발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무상 배임이 성립되려면 은행 측 손실이 입증돼야 하는데, 실제로 손실이 발생했나’라고 되묻자 이 관계자는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라고 답했다. 셀프대출의 원리금 상환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묻는 추가 질문에 대해서는 “개인금융거래이다 보니 말씀드리기 어렵다”는 답을 내놓았다.

정확한 속내는 알 수 없지만 만약 A씨 가족들이 대출 원금 및 이자 상환을 충실히 해왔다면 법적 처리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법률 전문가들이 대체로 비슷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는 A씨의 행위가 편법일 수 있어도 불법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사기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하지만 여기에도 일정한 전제가 요구된다. 대출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결재라인의 다른 직원들을 속이는 행위를 했고, 그 행위가 입증된다면 사기죄 처벌이 가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A씨가 담보물의 평가 가치를 부풀려 결재권자를 기망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사실이라면 기업은행 측은 A씨를 사기혐의로 고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고발 내용이 무엇이든 중요한 문제는 기업은행의 기강 해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국책은행으로서 더욱 중시해야 할 가치인 도덕성 문제로 연결된다. 일반인들의 시각으로 볼 때 기업은행이 지금까지 셀프대출 하나 제대로 적발하지 못할 정도로 허술한 여신관리 시스템을 운용해왔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이런 일은 일반 시중은행이었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기강해이가 근인(近因)이라면, 전부터 이어져온 기업은행 낙하산 인사는 원인(遠因)이라 할 수 있다. 올 초 취임한 윤종원 행장만 하더라도 취임 과정에서 홍역을 치르느라 일찍이 리더십에 큰 손상을 입었다. 이런 상태에서 기업은행이 내부 기강을 제대로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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