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임대차시장이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다. 상상 가능한 최대한의 극단적 상황들이 곳곳에서 나타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무기 삼아 집주인에게 이사비용 등의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요구하는가 하면, 전셋집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전세 매물로 냐온 아파트 대문 앞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몰려든 사람들은 전셋집을 차지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하는 ‘웃픈’ 상황까지 연출했다.

이뿐이 아니다. 귀해진 전셋집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부동산중개업자에게 웃돈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일도 벌어졌다고 한다. 전세 매물이 나오면 먼저 연락을 해주는 조건으로 법정 중개수수료에 웃돈을 얹어주겠다고 약속하는 사례까지 나타났다는 것이다. 집주인들은 면접을 통해 세입자를 가려 뽑아야 한다는 의견을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나누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사진 =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사진 = 연합뉴스]

이상은 대란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요즘의 전세난을 보여주는 코미디 같은 현상들이다. 우리가 단군 이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다. 제1 야당 국민의힘 비대위원인 김현아 전 의원은 전세를 ‘로또’로 칭하며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비현실성을 꼬집었다. 시장을 무시한 채 탁상공론에 의해 만들어진 정책이 각종 해프닝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희극적 상황은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사례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 현 정부 부동산 정책 사령탑인 그 자신도 스스로 만든 정책의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 덫에 걸려 졸지에 전세난민이 된 홍 부총리의 사례는 현 정부 부동산정책의 불합리성을 웅변하듯 드러내준다. 그런 점에서 정책실패 사례연구 감이라 할 만하다.

홍남기 부총리는 다주택자 시비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기도 의왕시 아파트를 팔려 했으나 기존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함에 따라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 세입자는 지난 8월 매매계약이 이뤄질 때와 달리 나중에 자신에게 갱신청구권이 있음을 알게 된 뒤 태도를 바꿨다고 한다. 이로 인해 매수자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됐고, 그 여파로 잔금을 치르지 못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매매 진행 과정의 발목을 잡은 것은 홍 부총리가 주도해 만든 6·17 부동산대책이었다. 이 대책으로 의왕은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됐다. 투기과열지구에서 아파트를 매입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면 6개월 이내에 전입해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해졌다.

때맞춰 홍 부총리는 전세로 살고 있는 마포의 아파트에서 나가야 하는 입장에 처했다. 홍 부총리는 집주인이 직접 들어와 산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에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로써 홍 부총리는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홍 부총리의 2주택 중 다른 하나는 세종시 아파트의 분양권이다.

홍 부총리를 진퇴양난에 빠뜨린 또 다른 요인은 전세 매물 품귀와 급등한 전세 가격이다. 매물도 귀하지만 어렵사리 인근에서 비슷한 조건의 전세 아파트를 찾는다 해도 보증금을 기존보다 2억 이상 더 지불해야 한다. 이런 상황 역시 그 자신을 비롯해 여권이 주도한 부동산 3법의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임대차 시장, 특히 전세 시장 난맥상의 뿌리는 누가 뭐래도 정부가 잇따라 내놓은 비현실적 부동산 대책들이다.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도 지적했듯이 여러 대책 중에서도 임대사업자 정책과 전월세 상한제가 문제를 크게 일으켰다. 이들 제도로 인해 반전세와 월세가 갑자기 늘어난 점도 전세난을 부추긴 2차 요인이 됐다. 여기에 집주인 입주를 독려하는 정책까지 가세하면서 전세 매물의 씨가 마르는 상황이 초래됐다. 수요 공급을 생각하지 않은 채 미봉책으로 전셋값을 잡겠다며 규제에만 몰두하는 바람에 생긴 부작용들이다.

홍 부총리의 사례 하나만으로도 정부가 그간 쏟아낸 부동산 정책이 근본부터 잘못됐음을 알 수 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몇 개월 후면 부동산 시장이 안정될 것이라 장담하지만 시장은 딴판으로 돌아가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전세난의 경우 3기 신도시 입주가 시작되는 2025년 이후에나 해소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믿고 싶지 않지만 무주택자들에겐 앞날이 캄캄하게 느껴지는 전망들이다.

정부는 전세난이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자 또 다시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정부의 움직임이 지금의 전세난보다 더 공포스럽게 느껴지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 정도로 현재의 경제팀과 부동산 주무 당국이 내놓는 대책은 더 이상 신뢰를 확보하기 어렵게 됐다.

헛발질은 그 정도로 충분하다.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정책실험은 이제 끝내야 한다. 이 정도 난장판을 만들었다면 새로운 팀을 꾸림으로써 부동산 정책 방향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게 그나마 최선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일 수 있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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