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등 요지에서 진행되는 아파트 청약이 번번이 현금부자들의 배만 불려주는 희한한 결과를 낳고 있다. 잘못된 부동산 정책이 초래한 부작용으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지만, 정부는 문제 해결책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정책 오류를 인정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대신 마녀사냥하듯 주택 임대사업자 등을 부동산 시장 불안정의 원흉으로 적시하며 남 탓만 하고 있는 게 근본원인이다.

그러는 사이 현금부자들은 강남, 세종 등 인기지역으로 몰려다니며 아파트 청약 현장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고 있다. 이때마다 언론은 ‘로또청약’이란 표현을 써가며 그 실상을 전하고 있다. 내 집 마련의 꿈이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고 느끼는 청년층이나 기타 서민들 입장에서 보면 열불이 나는 일이다. 세종의 경우 서울 등과 달리 지역 거주민이 아니더라도 무주택자라면 누구나 아파트 청약이 가능하다는 점으로 인해 청약 광풍이 거세게 불었다.

[이미지 = 현대건설 제공]
디에이치자이개포 아파트 조감도. [이미지 = 현대건설 제공]

전국 요지에서 벌어지는 로또청약 사태는 무주택 서민의 화를 자극하며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 이상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현금부자가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할 로또청약 게임은 그 자체로 우리사회에 ‘과연 공정이 살아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로또청약이 부자에게만 치부(致富)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부익부를 심화시키는 수단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디에이치자이개포 아파트 청약 사태는 로또청약이 안고 있는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번 청약은 한 번 청약이 이뤄진 이후 부적격 사유 등으로 인해 주인이 결정되지 않은 잔여물량 5가구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여기에 몰린 인원이 무려 24만8983명이었다. 얼추 잡아 5만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것이다.

경쟁률을 높이는 데는 무순위 청약 방식이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정도면 도저히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이번에 청약 대상이 된 이 단지의 아파트는 전용 84㎡와 118㎡ 두 가지였다. 전자의 경우 1가구 모집에 12만400명이 몰렸고, 4가구가 대상인 후자의 경우엔 12만8583명이 신청 대열에 합류했다. 규모별 최고 경쟁률이 12만400대 1까지 올라갔음을 알 수 있다.

경쟁률도 비정상적이지만 진짜 큰 문제는 게임 참여가 현금 부자에게만 허용된다는 사실이었다. 이 아파트는 높은 분양가로 인해 서민들에겐 신청조차 해볼 수 없는 그림의 떡이었다. 분양가는 전용면적 기준으로 84㎡가 14억1760만원, 118㎡가 18억8780만~19억690만원 수준이었다.

당첨된 사람은 이 많은 돈을 두 차례로 나누어 오는 10월29일까지 납부해야 한다. 시세 15억 이상 아파트인 만큼 은행 대출은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15억~20억원의 현금을 손에 쥐고 있는 서류상의 무주택자, 즉 순수 현금부자가 아니면 청약 신청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세종시 아파트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세종시 아파트 모습. [사진 = 연합뉴스]

하지만 당첨만 되면 최소 수억, 최대 십억대의 이익(세전)을 남길 수 있는 것이 이 아파트다. 분양가가 전세가격보다도 낮은 현실 덕분이다. 현재 이 아파트 단지 인근의 84㎡, 118㎡ 신축 아파트 전세가는 최소 15억 수준이다. 84㎡ 규모의 아파트 중에서도 전세가 20억원을 넘보는 곳이 있다. 분양받는 즉시 전세를 놓으면 수억원을 남길 수 있어 현금 부자들은 사실상 자기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불합리한 일이 합법이란 이름 아래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 시장에서의 로또청약 또는 로또당첨은 시장원리를 철저히 무시하는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낳은 기형적 현상이다. 공급 부족이란 병인(病因)을 해소하려는 노력 없이 가격만 찍어누르면 된다는 정부의 반시장적이고 단세포적인 발상이 문제의 근본원인이다.

아파트 가격 통제 정책은 여러 문제를 낳고 있다. 시공사가 땅값이 비싼 지역에 통제 가격에 맞는 내부 자재를 사용하다 보니 부자들이 입주한 뒤 멀쩡한 자재들을 뜯어내고 새로 내부 공사를 하는 일도 많아졌다. 활발한 재건축 사업으로 신흥 부촌으로 떠오르고 있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 등지의 신축 아파트에서는 기존의 고급 주거지에 거주하던 이들의 전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그들 부자에게는 하향평준화된 신축 아파트의 내부 시설이 달가울 리 없을 것이다.

현실 여건상 지금의 로또청약 사태는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문제를 해결해줄 새로운 묘책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문제 해결의 왕도는 시장원리에 맞는 쪽으로 정책을 바꾸는 것뿐이다. 그것만이 로또청약이라는 시장의 반격을 해소할 수 있는, 더디지만 유일한 방법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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