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우윳값 인상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시기와 폭이 문제일 뿐 유가공업체들의 우윳값 인상은 기정사실화됐다고 보는 게 옳을 듯하다. 이는 원유(原乳) 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는 낙농진흥회가 이미 원유 가격 인상을 우유생산업체에 통보한데 따른 것이다. 원유는 젖소에서 막 짜낸 미(未)가공 상태의 우유를 말한다. 유가공업체들은 낙농업자로부터 원유를 사들인 뒤 이를 이용해 가정에서 마시는 일반우유와 버터, 치즈, 생크림 등을 만든다.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낙농진흥회는 이달 1일부터 생산된 원유에 대해 ℓ당 가격을 947원으로 인상한다는 내용을 담은 유대조견표를 유가공업체들에게 보냈다. 인상폭은 21원(약 2.2%)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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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일반우유 등을 제조하는 유가공업체들도 조만간 제품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유가공업체들은 이번에 새로 인상된 가격으로 이달 전반기의 원유 대금을 낙농업자에게 지불해야 한다. 원유 대금이 보름에 한 번씩 정산되기 때문이다.

인상된 원유 가격을 지불한 우유제조업체들이 곧 일반우유 등 제품가격 인상에 나서리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다만, 각 업체들은 그 시점과 인상폭을 놓고 본격적인 고민에 들어갔을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우유 관계자는 “가격 조정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원유 가격 인상폭이 가공업체로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게 그 이유였다.

낙농업계가 원유 가격 인상을 강행함에 따라 소비자들의 생활물가 부담은 연쇄적으로 늘어나게 됐다. 마시는 우윳값이 인상되는 것은 물론 빵과, 버터, 치즈 등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각종 우유 관련 식품값이 줄줄이 인상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낙농진흥회의 이번 결정을 두고 비합리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원유가격 결정 구조를 이용해 편하게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려 한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즉, 원유 가격을 시장논리의 기본인 수요공급 원칙을 무시한 채 생산비만 따져가며 결정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얘기다.

최근 수년 동안 우유 소비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해 우유 소비층이 엷어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더구나 지난해 이후로는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학교급식을 통한 우유 소비도 크게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 국민 1인당 흰 우유 소비량은 26.3㎏으로 줄어들었다. 1999년(24.6㎏) 이후 가장 적은 양이다.

우유 소비 감소는 재고 증가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우유 재고는 분유형태로 이뤄지는데 올해 2월 기준 분유 재고량은 1만2109t으로 2016년 9월(1만2609t)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소비가 감소하는 바람에 재고가 점점 더 쌓여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인 제품이라면 이런 경우 수요공급 원칙이 작용해 소비자 가격이 하락하는 게 상식적이다.

물가 당국이 우유 가격 결정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이유도 이런 비정상적인 현상에서 찾아진다.

실제로 현재 우유 가격은 수요공급에 의해 자연스레 형성되는 게 아니라 원유 생산비에 연계돼 결정된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일부 반영되지만 핵심이 되는 기준은 원유 생산비다.

그 근간을 이루는 것이 이른 바 ‘원유가격 연동제’다. 이 제도는 2013년 박근혜 정부 때 도입됐다. 2010~2011년 전국에 걸쳐 나타난 구제역 파동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2000년대 들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발생한 구제역은 축산농가들에게 엄청난 타격을 가했고, 그 결과 원유산업의 기반이 흔들릴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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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당시 정부는 축산농가, 특히 낙농가를 살리기 위해 원유 생산업자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원유가격 연동제를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원유 가격을 둘러싸고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낙농업계와 유가공업체 간 갈등을 해소하려는 의도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이 제도 도입 이후 원유 가격과 우윳값은 전반적으로 상승 행진을 거듭해왔다. 심지어 지금처럼 우유 소비가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도 가격 인상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현행 제도가 낙농업계의 생산비 절감 노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기 시작했다.

비판과 불만이 커지자 결국 정부 당국이 원유 가격 결정구조를 손볼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낙농진흥회가 정부의 원유가격 인상 보류 권유를 묵살함에 따라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그간 낙농업계를 상대로 원유가격 인상 보류를 권유하는 한편 제도 개선을 위한 내부 검토를 벌여왔다.

검토 작업은 물가 당국인 기획재정부와 낙농산업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정부 관계자는 “우유 가격 결정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개편 방안을 마련하려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제도 개선을 위해 낙농업자들과도 머리를 맞대겠다고 부연했다.

현재 원유 가격은 낙농진흥회에 의해 결정된다. 문제는 낙농진흥회 이사진이 생산자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전체 15명 중 7명이 생산자 측을 대변하는 인사들이다. 이들이 뜻을 합쳐 움직이면 회의 성립 요건인 3분의 2이상 참석이 불가능해진다. 그러다 보니 이사회는 사실상 생산자들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볼 수 있다.

상황 변화를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가 이사회 구성 및 운영의 근거가 되고 있는 낙농진흥법을 개정하는 일이다. 따라서 정부의 원유가격 구조개선 시도의 구체적 방법은 관련법 개정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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