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현 정부의 부자 증세가 과도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소득세 징수에 있어서 부자들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에 조세정책의 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게 주장의 골자였다. 이 같은 주장은 대선을 앞두고 여야 대권 주자들이 각종 경제 관련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문제 제기를 한 곳은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다. 보수적 성향의 민간 싱크탱크인 만큼 이 기관의 주장엔 고소득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려는 목적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조세정책 전반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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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연은 8일 발표한 보고서 ‘소득세 세부담 누진에 대한 검토’를 통해 현 정부의 부자증세 정책 탓에 고소득자들에게 세부담이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우선 최근 5년 동안 부자들을 겨냥한 ‘핀셋증세’가 지속적으로 추진되는 바람에 고소득자들에 대한 최고세율이 45%까지 치솟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38%였던 소득세 최고세율을 두 차례에 걸쳐 끌어올렸다. 그 결과 최고세율은 45%로 상승했다. 두 번째 인상은 지난해 말 국회가 소득세법 개정안을 올해 예산안과 함께 부수법안으로 묶어 처리함으로써 이뤄졌다. 소득세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구간은 10억원 이상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실효세율을 기준으로 따져보았을 때 2019년 기준 과세표준 5억원 이상 고소득자의 실효세율이 기타 소득자에게 적용되는 세율의 3~7배에 달한다고 밝혔다. 또 이들 고소득자의 소득세액 비중이 소득 비중의 2~6배나 된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종합소득 고소득자와 근로소득 고소득자의 실효세율이 각각 33.5%와 34.9%로 집계됐다고 설명했다. 다른 소득자들보다 실효세율이 각각 3배, 6.6배나 된다는 것이었다. 실효세율이란 과세표준(각종 공제를 적용해 산출된 과세 기준금액) 대비 납세자가 부담하는 세액의 비율을 말한다.

전체 소득에서 고소득자들이 차지한 소득 비율보다 전체 소득세액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세액 비율이 월등히 높다는 점도 함께 거론됐다. 고소득자들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6.1%이지만 그들이 세액 면에서는 36.5%를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과세표준 10억원 초과 고소득자의 경우 지방소득세와 국민연금보험료, 건강보험료, 고용보험료 등을 모두 포함한 명목적인 부담금의 비율이 58.23%에 이른다는 점도 함께 지적됐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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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우리나라의 현행 소득세 최고세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35.9%보다 높고, 그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원인으로는 중하위 구간의 세율 조정 없이 조세저항이 적을 수밖에 없는 고소득 구간에 대해서만 세율 인상을 단행한 점을 꼽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기반으로 복지를 강화한 북유럽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서도 중하위권 소득자들에 대한 세율이 상대적으로 너무 낮아 세부담이 부자들에게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우리의 경우 근로소득자의 절반 정도는 소득세를 거의 내지 않고 있다. 또 근로소득자 10명 중 4명 정도는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고 있다.

물론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높은 세율 적용 구간이 우리보다 넓다는 점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면세율이 너무 높고, 세 부담이 소수 부자들에게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온 게 사실이다. 요는 누진성을 약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경연의 이번 보고서는 그런 목소리를 대변한 것으로 풀이된다. 종합하자면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란 조세의 기본원칙에 보다 충실해지도록 세제를 개편하자는 주장을 폈다고 볼 수 있다.

보고서 작성자인 한경연의 임동원 부연구위원은 프랑스의 부자 증세제도 폐지 사례를 거론하면서 “고소득자에게 집중된 증세는 세수 증대 효과를 주기보다 인력 유출 등의 손실을 가져다준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부자 증세를 완화하고 면세자 비율을 낮춤으로써 세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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