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금융 당국의 강력한 가계대출 억제 방침에 따라 은행권의 신용대출 조이기가 본격화됐다. 대체적 방향은 신용대출 한도는 개인 연봉 이내로, 마이너스통장(마통) 대출 한도는 5000만원선 이하로 제한하는 쪽으로 정리되고 있다.

최근 은행권에서 가장 먼저 신용대출 제한을 실시한 곳은 NH농협은행이었다. 이 은행은 신용대출 한도를 1억원으로 제한한 데 이어 16일부터는 마통 대출 한도를 기존의 1억원에서 5000만원으로 줄이기로 했다.

NH농협은행 외에 신한은행도 개인 연소득 100% 이내로 신용대출 한도를 설정했고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도 이달 안에 비슷한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이들 주요 은행이 속속 ‘연소득 이내 신용대출’ 기준을 적용키로 하자 5대 금융그룹의 나머지 한 곳인 우리은행도 그 흐름에 동참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15일부터 개인 신용대출 한도를 당사자의 연소득 이내로 제한키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WON하는 직장인대출'을 비롯해 ‘우리주거래 직장인대출’ 등 8개 주요 신용대출 상품의 한도가 연 소득 이내로 축소된다.

이 같은 방침은 신규 및 증액 대출에만 적용된다. 만기 도래 후 대출기간 연장 시엔 해당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5대 금융그룹이 흐름을 선도함에 따라 외국계 및 인터넷 전문은행들도 속속 동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외국계인 SC제일은행과 한국씨티은행,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도 내부적으로 비슷한 기준을 설정한 뒤 적용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는 이들보다 한 발 앞선 지난 8일 신용대출 한도를 7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줄인 바 있다.

신용대출 중에서도 마이너스통장의 한도액은 더 크게 제한된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우리은행·하나은행은 최대한도를 5000만원으로 제한키로 했고, 카카오뱅크는 한도액을 3000만원으로 줄였다. 마통 한도액이 1억5000만원인 케이뱅크도 조만간 액수 조정에 나서기로 했다.

은행들의 연이은 신용대출 한도액 조정은 금융 당국의 강력한 권고에서 비롯됐다. 집값 폭등세가 장기화되면서 무주택자들이 ‘영끌’로 돈을 모아 집 장만에 나서고, 그 바람에 집값이 더 뛰어오르고, 오른 집값이 다시 대출 욕구를 자극하는 악순환이 이어지자 금융당국이 팔을 걷어붙인 채 대출 조이기에 나선 것이다.

당국의 이런 행보는 최근 고승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금융위원회 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갑자기 빨라졌다. 금통위원 재직 시에도 매파로 불리며 긴축적 통화정책을 선호했던 그는 취임 직후 금융지주 회장단과 간담회를 갖고 대출 규제 방침에 호응해 줄 것을 당부했다.

현재 금융 당국은 올해 가계부채의 총량이 전년에 비해 6%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고 위원장은 지난 10일 금융지주 회장들과 만난 뒤 기자들에게 그 같은 방침을 확인했다.

하지만 가계대출 현황을 보면 정부 방침이 관철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금융위 집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까지 추가된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 규모는 87조4000억원이다. 작년 같은 기간의 가계 대출 증가폭은 60조2000억원이었다. 작년 말 가계대출 잔액이 1630조2000억원이었음을 고려하면 올해 8월말 기준 가계대출 증가율은 5.3%로 집계된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연간 증가율을 6%로 관리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연말까지는 가계대출을 추가로 허용치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우려되는 점은 밀어붙이기식 대출 제한이 몰고 올 부작용이다. 이번 대출 제한은 시장원리에 반해 거의 일률적인 방식으로 시행되는 것으로서 관치금융 논란을 초래할 여지를 안고 있다. 후유증에 대한 불만이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점을 의식한 듯 고승범 위원장은 ‘질서 있는 정상화’를 강조하고 있다. 그 대안은 코로나19 여파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기업 운영자나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만기연장 또는 상환 유예 등의 조치를 내년 봄까지 유지한다는 것 등이다.

갑작스러운 대출 제한으로 주택 매매나 전·월세 계약 등에 차질을 빚게 될 사람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서민과 청년층의 실수요에 의한 주택 거래 및 임대차 계약에까지 차질을 주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금융권 대출 제한이 초래할 풍선효과에도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 은행권 문턱이 높아지면 경제적 어려움이 큰 계층의 비은행권 대출 의존도가 높아지는 건 자명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실수요 전세대출에 대한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관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