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택 임대차 시장의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것 같다. 구체적 이유는 전세가격 폭등과 이중가격 현상 등 시장왜곡의 심화일 것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 15일 관련 대책 마련을 예고했다. 홍 부총리의 예고가 아니더라도 시장에서는 정부가 조만간 새로운 대책을 제시할 것이라는 예상이 일반화돼 있었다. 숙의 과정 없이 대책을 만들어 밀어붙인 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땜질식 처방을 하는 것을 익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새로운 대책 중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이 표준임대료 제도다. 여당 의원들도 이미 관련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표준임대료 제도는 지방자치단체별로 지역 내 시세현황과 물가 수준 등을 고려해 적정 수준의 기준을 산정한 뒤 임대료를 일정 범위 안에 묶어두는 제도를 말한다. 가격 상한을 두어 사실상 정부가 임대료를 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제도는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한 사회에서 시장가격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통제해서 성공한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완벽한 통제가 전제되지 않는 한 가격통제 정책은 늘 암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부작용만 일으켜왔다. 결과적으로 시장을 왜곡시켜 예외 없이 국가경제에 해악을 끼쳤다. 당장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전월세 상한제의 부작용만 떠올려도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현 정부는 이미 전월세상한제를 통해 재계약시 전세보증금이나 차임을 기존의 금액보다 5% 넘게 올리지 못하도록 강제했다. 계약갱신청구권제도를 통해서는 2년 단위의 전세계약을 한 번에 한해 갱신할 수 있는 권리를 임차인에게 부여했다.

두 제도의 조합에 따라 사실상의 임대료 상한제가 효력을 발휘하면서 시장은 심하게 왜곡됐다. 비슷한 조건의 아파트 전세가가 수억대의 차이를 보이고, 새로운 임대차 계약시 4년 뒤의 상승 가격을 예상해 전세가격을 한꺼번에 왕창 올리는 일이 빈번해졌다.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이 예상했던 대로 전세제도 자체가 소멸돼가는 기미까지 나타났다. 각종 부작용의 와중에 진짜로 피해를 보는 쪽은 집 가진 이가 아니라 무주택자들이었다.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서울 지역의 아파트 전세거래 신고 건수는 작년 동기에 비해 13.9% 감소했다. 올 들어 신규계약과 갱신계약 간에는 평균 9633만원의 전세보증금 차이가 발생했다. 전세가 사라져가고 있고,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는 전세 시장에서는 이중가격 현상이 고착화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 의원이 한국부동산원 자료를 인용해 밝힌 바에 의하면 올해 7월의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는 1년 전보다 1억3528만원이나 올라 6억2402만원을 기록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모두가 임대차 3법이 시행된 뒤 나타난 부작용들이다. 정부 여당이 섣불리 시장가격 통제에 나서는 바람에 시장이 왜곡되고, 결국 무주택 서민이 고스란히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이런 난국에 또 하나의 가격통제 정책이 가세한다면 주택 임대차 시장의 혼란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정부만 빼고 모두가 예상하는 가까운 미래의 암담한 모습이다. 그래서 무주택자나 임차인들은 표준임대료 이야기가 거론되는 상황을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같은 지역 내 같은 평수의 아파트라도 임대인의 신용 정도, 내부 인테리어, 임차인 개개인의 선호에 따라 임대료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음을 감안하면 표준임대료 제도는 결코 시장친화적이라 할 수 없다. 그 속성상 무리 없이 뿌리내리기 어려운 제도라는 얘기다.

물론 정부가 표준임대료 카드를 꺼내들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라보고 놀란 가슴들은 솥뚜껑만 보아도 놀랄 만큼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규제 일변도로 갈 바엔 차라리 아무 대책도 내놓지 않고 그냥 시장에 모든 걸 맡겨두는 게 낫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 정책의 경우 의도가 선하다 해서 결과까지 선해지는 건 아니다. 그런 사례를 우리 모두는 현 정부 들어서만 20차례 넘게 경험했다. 의도가 선하다 해서 결과에 대한 책임이 면해지는 것도 아니다. 정책 당국이 이제라도 두려운 마음으로 결과에 대해서도 심사숙고하는 자세를 가져주길 기대한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