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중국의 전력난이 자국 내 산업생산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고 있다. 문제는 그 여파가 중국을 넘어 세계적 공급망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전력난은 속성상 중국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있는 만큼 정치 지도자의 정책의지에 따라 장기화될 수도 있다.

◇전력난 실태

온라인 매체인 펑파이 등 현지 언론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지난 29일 현재 중국의 31개 1급 행정구역 중 20개 지역에서 전력 공급 제한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중국은 최상위급 행정구역으로 22개 성(省)과 5개 자치구, 4개 직할시를 두고 있다. 이들 31개 지역 외에 별도로 2개 특별행정구역이 추가돼 있는 것이 중국의 현행 행정구역 체계다.

신경보 등 다른 현지 매체들은 10여개의 성에서 산업용 전기가 제한적으로 공급되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지역에는 중국 경제의 핵심 축인 동남부 연안의 광둥성과 저장성·장쑤성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 3개 성이 중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만 해도 3분의 1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력난으로 인해 어둠에 휩싸인 중국 상하이의 불꺼진 주거용 건물들. [사진 = AFP/연합뉴스]
전력난으로 인해 어둠에 휩싸인 중국 상하이의 불꺼진 주거용 건물들. [사진 = AFP/연합뉴스]

산업용 전력 공급 제한조치가 이뤄진 성 단위 지역엔 랴오닝성과 지린성·헤이룽장성 등 동북 3성도 포함돼 있다. 조선족 자치주 등이 포함된 동북3성은 북한과 인접한 곳으로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가정용 전기까지 끊어지는 사태가 벌어지는 한편 가로등과 교통신호등이 종종 꺼지는 바람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전력 사정이 열악한 헤이룽장성의 하얼빈에서는 신선식품을 파는 상점을 제외하고는 오후 4시까지만 영업이 허용되고 있다.

상하이에서는 중국 국가전력망공사 지사가 지난 27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시기와 지역을 특정해가며 정전을 한다는 공지를 냈다. 이로써 중국의 대표적 경제도시인 상하이마저 전력 공급난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중국의 전력 공급 제한의 여파는 산업생산 전 분야에 미치고 있다. 대형 제철소 등 주요 제조업은 물론 섬유와 식품 등 생필품 관련 제조업 분야까지 영향권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도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장쑤성에 진출한 포스코 스테인리스 제조공장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 공장은 전력 공급이 끊기는 바람에 10월초 정상화를 기대하며 주요라인 가동 중단에 들어가 있다. 랴오닝성 선양(옛 이름 봉천)에 지어진 오리온 공장은 당국의 통보에 따라 이달 말까지 가동을 중단키로 했다.

전력 공급 제한은 대개 사전 예고도 없이 일방적 통보와 함께 이뤄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중국 당국의 전력 공급 제한이 대개는 대형 생산업체를 우선 대상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점을 감안할 때 일상생활에까지 전력난 여파가 미치는 현 상황은 전력난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상황의 심각성은 광저우 등 주요도시가 국경절 조명쇼까지 중단 또는 시간 단축을 감행하기로 한데서 엿볼 수 있다. 펑파이는 광둥성의 광저우가 전기 절약을 위해 다음달 1~7일의 올해 국경절 연휴에 조명쇼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선전시는 대규모 조명쇼를 생략한 채 야경용 조명만 짧은 시간 동안 밝히고 가로수 조명을 모두 끄겠다고 밝혔다.

◇원인 및 배경

중국 전력난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석탄 공급 부족으로 빚어진 화력발전소 가동률 저하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 정부의 엄격한 탄소 배출 억제 정책이다.

석탄 공급 부족은 호주와의 외교 갈등과 관련이 있다. 호주가 코로나19 기원 조사를 촉구하자 이에 발끈한 중국 정부가 호주산 물품에 대한 수입중단 조치를 취한 것이 화를 자초했다. 양국 간 갈등은 호주의 오커스(AUKUS: 미국 주도의 안보 파트너십) 가입으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수입중단 조치로 중국 의존도가 큰 호주도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었지만 중국이 입은 타격은 그보다 더 크고 심각했다. 중국은 석탄 수요의 절반 정도를 호주에 의존해왔다.

석탄 공급 부족은 화력발전에 주로 의존하는 중국의 발전 역량을 크게 떨어뜨리는 작용을 했다. 석탄 부족 현상은 중국 발전기업들의 석탄 구입비용을 증가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하는 등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중국내 화력발전소들의 석탄 구입난이 전력공급난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고 볼 수 있다. 호주와의 외교 갈등은 중국 지도부가 ‘경제보복’ 차원에서 단행한 것이어서 당분간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허베이성의 화력발전소. [사진 = EPA/연합뉴스]
중국 허베이성의 화력발전소. [사진 = EPA/연합뉴스]

중국 정부의 강력한 탄소배출 억제정책도 전력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내년 2월의 베이징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강력한 저탄소경제 실현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를 두고 서방의 한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지도부가 올림픽 기간 중 베이징의 푸른 하늘을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저성장을 감수하기로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중국 사회의 특성상 지방정부들이 탄소배출 제한과 관련한 할당목표를 채우기 위해 미리부터 전력 생산량을 조절하는 것도 전력난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는 전력 공급 능력이 부족하지 않은 지역에서도 덩달아 전력난이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파장 및 전망

전문가들은 중국의 전력난 사태가 헝다그룹 사태보다 더 큰 경제적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의 생산시설 중단 사태가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를 초래하는 것은 물론 세계적 공급망에도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중국경제는 작년 하반기부터 코로나19 파장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코로나19의 진원국으로 의심받으면서도 경제회복 속도는 오히려 다른 나라들보다 빠르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국제적으로 원자재 값이 급등하고 반도체 품귀 현상이 나타남으로 인해 성장속도가 다시 둔화되기 시작했다.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지난 1분기 기저효과까지 겹쳐지면서 18.3%까지 올라갔지만 2분기에는 7.9%로 낮아졌다. 성장률은 3분기와 4분기로 넘어가면서 더욱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참고로 중국은 분기별 성장률을 전년 동기 대비 방식으로 집계한다. 우리가 전기 대비, 미국이 전기 대비 연율 방식을 취하는 것과 다른 방식이다.

이번 전력난은 중국 경제성장의 둔화 과정에서 터진 새로운 악재다. 이로 인해 국제적 투자은행들은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치보다 잇따라 낮추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27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0.4%포인트 낮춘 7.8%로 다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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