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대로다. 하지만 인상 시점을 잠시 미뤘을 뿐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의지는 여전히 강한 것으로 보인다. 한은이 통화정책을 운용하는데 있어서 가장 크게 관심을 두는 부분이 금융불균형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은은 12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0.75%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회의에서 7명의 위원 중 최소 2명이 기준금리 인상을 주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주열 총재는 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임지원·서영경 위원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고 밝혔다. 이번엔 기준금리가 동결됐지만 다음 회의에서 금리 인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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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이 이번에 기준금리를 동결한 대표적 원인으로는 최근 부진하게 나타난 경제지표가 지목된다. 지난달 말 통계청이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8월 경제지표는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에 머물렀다. 생산과 소비, 투자가 일제히 감소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트리플 감소의 현실화는 3개월 만의 일이다.

정부는 경제지표 개선이 단기간에 이뤄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금리 동결의 또 다른 배경으로는 중국 헝다그룹 사태와 국내 증시 불안 등을 꼽을 수 있다. 중국의 전력난 등에 따른 세계 공급망 불안과 그로 인한 세계경제 회복세 둔화 조짐도 한은의 금리인상 의지를 일정 부분 억제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상의 이유들로 인해 한은은 서둘러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기보다 한 템포 쉬어가며 경제상황 변화를 보다 면밀하게 관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을 언제까지나 미루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수 전문가들은 이번 숨고르기를 거친 뒤 당장 다음달 25일 열리는 올해 마지막 금통위 통화정책회의 때 기준금리를 1.00%로 올릴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한은이 올해 안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 첫째가 금융불균형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저금리에서 비롯된 풍부한 유동성 탓에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가격 상승, 가계대출 증가 등의 금융불균형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의 물가 상승세 흐름도 장기간의 저금리 정책과 무관치 않다.

따라서 올해 안에 한은이 기준금리를 한 번 더 올릴 것이라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여기에도 몇 가지 상정 가능한 변수가 있다. 대표적인 변수는 코로나19 전개 상황이다. 특히 다음 달 중순 ‘위드 코로나’ 정책이 시행된 이후 감염병 사태가 급격히 악화될 경우 한은은 경기회복세 둔화를 우려하며 또 한 번 깊은 고민에 빠질 수 있다.

기타 변수로는 물가 흐름, 미국 등 주요국가의 통화정책 변화 등이 거론될 수 있다. 만약 미국이 금리 인상 시기를 예상보다 앞당길 조짐이 나타난다면 국내 증시가 출렁일 수 있고, 이는 한은의 금리 인상 의지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미국 금리 인상과 달리 물가 상승세는 금리 인상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변수다. 물가에 대해 한은은 8월 전망치를 웃돌 것이란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한은 이주열 총재는 “인플레는 (금리정책 운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날 금통위 회의가 끝난 뒤 다음 달에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있음을 강하게 시사했다. 그는 “경기 흐름이 예상대로 진행된다면 다음 회의에서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은행 총재의 금리 관련 발언치고는 전례 없이 구체적이라 할 수 있다. 이변이 없는 한 다음 달 중 금리를 더 올릴테니 미리 준비하라고 시장에 신호를 준 셈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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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의 이 같은 움직임은 우리 경제가 당초 예상대로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란 판단과 관련이 있다. 한은은 여전히 우리 경제가 올해 4%, 내년엔 3%의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는 판단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이날 발표된 한은 금통위의 의결문을 통해 재차 확인됐다. 금통위는 의결문을 통해 “코로나19 관련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으나 국내 경제는 양호한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물가가 당분간 2% 이상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적절히 조정해 나가겠다”고 부연했다.

이 역시 이번엔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큰 틀에서 우리 경제가 예상했던 경로를 걷고 있는 만큼 다음 달엔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되는 내용이다.

한은은 지금의 금융 여건이 여전히 완화적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 같은 인식을 반영하듯 이 총재는 이날도 “(지난 8월의) 한 차례 금리 인상만으로는 정책효과의 가시화가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다만, 이 총재는 “여러 대내외 여건 변화가 국내 경제와 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경기회복 흐름이 전망에서 벗어나지는 않는지 등을 짚어볼 것”이라고 말해 여지를 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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