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아파트 임대차 계약에서의 ‘반전세’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서울만 놓고 보면 그 비율은 이미 40%선을 넘보고 있다. 큰 흐름에서 전세가 점차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월세가 채워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는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비록 무이자이지만 전세자금이 예금처럼 활용돼 내 집 장만을 위한 사다리 역할을 해주었는데, 이젠 무주택자들이 그런 기대를 갖기 어렵게 된 탓이다. 전세의 월세화는 무주택자들의 주거비 부담을 증가시킨다는 점에서도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수 없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한국 고유의 전세제도가 사라져가는 데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통계 분석에 따르면 올해 8~10월 서울에서 체결된 아파트 임대차계약 건수(지난 26일 기준)는 모두 3만3435건이었다. 이 중 월세가 낀 계약 건수는 1만3099건이었다. 전체 계약 중 39.2%가 월세를 낀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나머지 60% 정도만이 순수 전세 계약이었음을 말해준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서울시 분류 기준에 의하면 임대차계약은 전세, 월세, 준월세, 준전세 네 가지로 분류된다. 이중 월세와 준월세를 나누는 기준은 보증금 액수다. 보증금이 월세의 12개월치 이하면 월세, 12개월치 초과이면서 240개월치 이하이면 준월세로 분류한다. 보증금이 월세 240개월치를 초과하면 준전세라 칭한다.

하지만 이는 서울시의 공식 분류 방식에 의한 것일 뿐이다. 세간에서는 오피스텔 등을 제외한 아파트의 임대차 계약이 월세를 조금이라도 낀 채 이뤄지면 반전세로 통칭된다.

이런 전제 하에 최근 5년간의 반전세 증감 추이를 정리하면 연도별 비율은 30.4%→26.8%→27.1%→32.9%→39.2% 등의 흐름을 보인다. 대체적 흐름상 지난해와 올해 반전세 비중이 크게 증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배경엔 지난해 7월 시행된 새로운 임대차법(계약갱신청구권제, 전월세상한제 등 포함)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더해 최근 정부 당국이 대출규제를 강화한 것이 반전세 증가를 한 번 더 재촉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전세 증가세는 무주택자들의 바람과 상충된다는 점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대개의 경우 세입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반전세를 선택한다고 보아야 한다. 폭증한 전세 보증금을 감당하지 못해 증가분을 월세로 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 들어 금융 당국의 강력한 대출규제까지 현실화되자 세입자들의 전세 보증금 추가 마련은 더욱 어려워졌다.

이래저래 반전세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정부 당국에 의해 조성된 것이다. 물론 이런 현상은 정부도 원했던 바가 아니다. 전세의 월세화는 정책 오류로 인해 생겨난 대표적 부작용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금융 당국은 고승범 금융위원장 취임 이후 강력한 가계대출 관리에 나서기 시작했다. 일부 예외를 두긴 했지만 올해 말까지 은행권을 상대로 전년 말 대비 6%대 이내에서 대출 증가율을 관리해달라고 권고했고, 내년 1월부터는 가계대출 총액이 2억원 이상인 사람은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소득 대비 원리금 비율) 40% 규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대출 총액 2억 기준은 내년 7월부터 1억원으로 또 한 번 강화된다.

지금은 규제지역에서 6억원을 초과하는 주택담보대출을 받거나 1억 초과 신용대출을 받을 때에 한해 DSR 40%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앞으로 반전세 증가세, 즉 전세의 소멸화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데 있다. 이런 현상은 이미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이런 흐름에 대한 전망은 진작부터 있었다. 대표적 예가 지난해 7월 당시 있었던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의 예언이었다. 윤 전 의원은 당시 여당의 임대차3법 처리 강행에 반대하는 내용의 국회연설을 통해 전세의 소멸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윤 당시 의원은 “저는 임차인입니다”로 시작하는 연설을 통해 임대차3법 내용을 보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설명한 뒤 ‘4년 뒤엔 (나도) 꼼짝없이 월세로 들어가게 되는 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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