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유류세 한시 인하를 결정했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 26일 열린 물가대책 관련 당정협의를 통해 다음달 12일부터 휘발유 등에 부과되는 유류세를 20% 내리기로 했다. 시행 기간은 내년 4월말까지 6개월이다.

정부는 이에 앞서 올해 말로 종료되는 유류세의 유효기간을 3년 더 연장하는 내용의 교통·에너지·환경세법(교통세법) 개정안을 지난달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면 유류세는 2024년 말까지 효력을 이어가게 된다. 역대 정부는 그동안 유류세의 일몰 기한을 때를 맞춰가며 거듭 연장해왔다.

결국 정부는 이번에 그냥 놔두면 자동으로 효력을 상실할 유류세를 교통세법 개정을 통해 재차 살려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유류세 인하 조치를 취하는 모양새를 취하게 됐다. 얼핏 보면 국민들에게 병 주고 약 주는 행동을 번갈아 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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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조치는 정부가 나름대로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놓은 불가피한 방책이라 할 만하다. 비록 한시적이지만 유류세는 현실 여건상 당장 없애기 어려운 대상이고, 그렇다고 해서 물가고에 장기간 시달리는 서민들에게 유류세 부담을 그대로 지게 할 수도 없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사실 유류세는 그동안 ‘좀비세’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1994년 처음 관련법이 만들어질 때부터 일몰기한이 설정돼 있었다는 점이 그 배경이다. 처음 입법 의도대로 하자면 유류세는 10년 동안만 유지된 뒤 자동 소멸됐어야 했다. 하지만 각 정부가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이유로 일몰기한을 매번 연장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근근이 효력을 유지해오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유류세는 그리 달가울 수 없는 세목이다. 액수 자체가 만만치 않은데다 유류 구매량에 따라 세금이 매겨지는 종량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 주요 원인이다. 유류세는 국세청 목록에도 없는 세목이다. 정확히는 휘발유와 경유 등 각종 파생 연료에 붙는 7개의 세금(교통세 등)과 준조세를 통칭하는 말이다.

더구나 ‘리터당 얼마’ 하는 식의 종량제 방식으로 부과되기 때문에 기름값이 아무리 내려가도 유류세 부담은 거의 그대로 유지된다. 극단적 예를 들면, 기름값이 0원이 되어도 리터당 유류세는 그대로 내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현재 기준으로 유류세가 유류 소비자 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정도나 된다. 그런 탓에 유류세는 소비자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 세목 아닌 세목이 돼버렸다.

하지만 연간 20조원 이상 걷히는 유류세는 교통시설 확대 및 개선, 환경 개선·보전 사업 등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탄소중립이 국제사회의 당면 과제로 부상한 까닭에 유류세 존재 이유가 더 커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수년 전 한국의 대기오염 문제를 들어 환경세 인상을 권고하기도 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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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들로 인해 유류세는 국민 부담을 키운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 명맥을 유지해올 수 있었다. 한때 폐지 주장이 국회에서 제기됐고, 이명박 정부 당시 폐지 시도도 있었으나 이익단체 등의 반대 의견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정황상 유류세는 존속될 필요성이 있는 세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좀비세’란 오명을 벗고 상설 세목으로 자리잡게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다만, 교통 인프라가 웬만큼 갖춰져 있고, 나아가 탄소중립이 주요 화두로 떠오른 지금의 시대적 소명에 맞게 명칭 및 용도 등을 변경하는 작업이 함께 추진돼야 할 것이다. 과세의 합목적성을 강화함으로써 납세자들의 거부감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런 작업이 인기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인기 있는 정책 시행에만 신경써왔다는 비판을 받아온 터다. 그런 비판을 일부나마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이참에 유류세제의 근본적인 개선에 나서주면 어떨까 싶다. 유류세제 개편은 욕을 먹더라도 정부가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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