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주자들이 경제정책 아이디어들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는 요즈음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붕괴된 중산층 복원에 대한 의지는 별반 눈의 띄지 않는다. 체계화된 중산층 관련 대책은 말할 것도 없고 중산층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보기 힘들 정도다. 문재인 정부 4년여 동안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됐다고 비난을 퍼붓는 보수 야당 후보들도 예외가 아니다.

보수 야당 주자들의 지적대로 문재인 대통령 집권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이념적으로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양극화가 더욱 심화됐다. 통계청의 균등화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을 보더라도 2018~2019년 소득 상위 20% 부자와 하위 20% 빈자 간 소득 격차는 이전보다 더 벌어졌다.

통계청의 자료 산출 방식 변경 탓에 시계열(관측 값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함)이 단절됨에 따라 2019년을 전후한 배율 변화 추이를 한눈에 확인하기는 어려워졌지만, 그 이후에도 소득격차는 크게 해소되지 않은 게 사실이다. 통계청의 분기별 균등화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1인 이상 가구) 자료에 따르면 4분기를 기준으로 한 2018~2019년의 배율은 각각 6.73과 6.58이었다. 직전 정부 기간 내내 같은 통계 방식으로 산출된 배율이 5.54(2017년)를 넘지 않았던 것과 비교된다. 위 자료는 통계 개편 이후 직접 비교가 가능해진 2020~2021년 배율 추이도 그 이전 해에 비해 크게 개선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5분위 배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소득 불균형 정도가 더 심화됐음을 의미한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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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주목할 점은 문재인 정부가 소득 1분위 가구에 대한 직접지원에 역대 어느 정부보다 적극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정까지 감안하면 1분위 가구가 스스로 벌어들이는 수입(근로소득)은 5분위 배율 지표 이상으로 악화됐다고 볼 수 있다. 그 실태는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후대 정부들이 1분위 가구에 대해 지금 수준의 직접지원을 이어가지 않는 한 소득 양극화가 한순간에 극단적으로 악화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걸까. 근본 원인은 잘못된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채택이었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으로 임금 수준 자체가 급히 올라간 데다 주52시간제의 강행군식 도입으로 초과근무수당 등에 대한 부담까지 갑자기 커지자 사용자들이 신규 고용을 꺼리게 된 것이다. 그 후폭풍을 가장 먼저, 직접적으로 맞은 이들이 저소득층이다.

집권 세력의 고질적인 편가르기도 양극단으로의 각자 쏠림 현상을 가속화시켰다. 양극단 중 하나를 강요받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진보와 보수 정당 어느 쪽도 중산층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지금의 소득 양극화 현상은 이 같은 정치 환경과도 무관치 않다. 정치적으로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중간지대가 사라져버리다시피 한 것이다.

소득 양극화 심화는 중산층의 붕괴로 이어졌다. 중산층 붕괴는 사회의 안정성이 그만큼 손상됐음을 의미한다. 이는 소득 양극화가 갖는 심각성에 주목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중산층은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존재다. 중산층이 두툼한 사회는 그에 비례하는 안정성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자유시장경제를 추구하는 국가들까지도 적절한 관리와 규제를 통해 중산층 유지·확대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중위소득자를 포괄하는 개념의 중산층이 갖는 정치성향 탓인지 주요 대권 주자 누구도 그들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대권 주자 각자에게 중산층 유권자들은 ‘집토끼’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게 그 이유가 아닌가 싶다.

그나마 중산층 문제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인 이는 여당 내 대권 경쟁에서 중도탈락한 이낙연 전 총리였다. 이 전 총리는 대권 주자들 중에서 체계화된 중산층 관련 정책 아이디어를 제시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과문 탓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그는 문재인 정부 총리로, 집권당 대표로 재직하면서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초래한 부작용과 문제점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정확히 깨달았던 것 같다.

이 전 총리는 중산층 정책 아이디어를 체계적으로 제시한 것과 함께 목표 비율도 명확히 밝혔다. 현재 50%대 후반까지 떨어져 있는 중산층 비율을 70%대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그의 약속이었다. 중산층의 개념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제시되고 있지만, 그가 말한 중산층은 소득 수준이 중위소득의 50~150% 구간에 있는 계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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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좋은 일자리 만들기’를 ‘중산층경제’ 확립의 기본 방안으로 정한 뒤 세부적으로는 인공지능(AI)과 바이오, 시스템 반도체 등의 육성을 지목했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5가지 성장전략으로는 기술성장, 그린성장, 사람성장, 포용성장, 공정성장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3중 폭격론’과 ‘4대 기본원칙’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난에서 세부 내용을 일일이 설명하긴 어렵지만, 중요한 점은 그가 ‘중산층경제’ 확립 방안을 체계화한 뒤 목표수치까지 명확히 내놓았다는 사실이다.

국민의힘 후보들이라고 해서 중산층을 완전히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홍준표 후보는 재산세로의 종합부동산세 흡수통합, 중산층 65% 달성을 통한 국가 도약, 신용 사면, 주 52시간제 잠정 중단을 제시했고 유승민 후보는 1주택자 취득세율을 1%로 고정하고 주택 양도세 최고세율은 40% 이하로 낮추겠다는 정책 아이디어를 제시한 바 있다. 모두 중산층 지원 및 확대를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산발적으로 제시된 낱낱의 아이디어들일 뿐 하나의 정책철학으로 체계화시킨 것은 아니었다.

잘 짜여진 중산층 정책을 통한 목표치 제시는 국가경제의 운명을 결정짓는데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중산층 확대·복원을 기본철학으로 삼을 경우 부동산세제와 소득세제를 포함하는 각종 조세정책과 주택정책, 헬스케어 관련 정책, 일자리정책, 산업정책, 성장 및 분배정책 등 제반 경제정책들이 일관된 흐름 속에서 조화롭게 추진될 수 있다. 이를테면 교육정책도 빈곤층에게 중산층으로의 사회이동 기회를 균등히 제공하는 방향으로 새롭게 설계할 수 있게 된다. 그래야만 하나 둘 사라져버린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다시 만들어질 수 있다.

대권 주자들의 경제정책 공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철학이다. 지금의 현실을 고려하자면, 그 답은 중산층 경제의 복원이어야 한다. 중산층이 다시 탄탄해짐으로써 경제적 양극화가 해소되어 간다면 사회가 보다 안정화되고 고질이 되어가는 이념 갈등도 점차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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