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마침내 테이퍼링 일정을 발표했다. 테이퍼링은 중앙은행이 채권 등 자산의 매입 규모를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표현하면 시중에 푸는 돈의 양을 줄여나가겠다는 중앙은행의 의지 표명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침체된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장기간 채택해온 완화적 통화정책을 더 이상 유지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일종의 정책전환 선언이라 표현할 수 있다.

연준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장기간에 걸쳐 매달 1200억 달러(약 142조원) 규모의 자산을 매입해왔다. 다달이 그만큼의 달러화를 시중에 풀어온 셈이다. 하지만 이번 달부터 그 규모를 서서히 줄여가겠다는 것이 지난 3일 오후(현지시간)에 공개된 연준의 결정 내용이다. 앞서 연준은 이틀에 걸쳐 통화정책회의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진행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사진 = AP/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사진 = AP/연합뉴스]

테이퍼링은 점진적·단계적으로 실시한다는 게 연준의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이퍼링 일정 돌입은 완화적 통화정책을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되돌리는 첫걸음이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연준이 아무리 기준금리 인상과 직접 연관이 없다고 강조해도 시장은 테이퍼링 다음 단계가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도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은 이제 시간문제로 남아있을 뿐이다. 첫 시작은 테이퍼링이 끝나는 내년 6월 직후가 될 가능성도 있다.

시장금리도 통화정책 전환 기조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비근한 예가 최근 미국 채권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장단기 채권의 금리차 확대다. 보통 장단기 금리차 확대는 경기 개선과 그로 인한 물가상승 및 금리인상 기대심리의 확산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양면성이 있긴 하지만 이런 상황은 주식시장에 긴장감을 불어넣기 마련이다. 특히 긴축적 통화정책으로의 방향 전환은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도를 낮추는 가장 확실한 요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이퍼링 일정 발표 직후 뉴욕증시 등 금융시장은 정반대의 흐름을 보여주었다. 테이퍼링 효과가 이미 시장에 어느 정도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뉴욕증시가 보인 반응은 그 이상이었다. 금리 동향에 민감한 나스닥지수는 당일 1% 이상의 상승률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를 두고 시장 전문가들은 큼지막한 불확실성 하나가 제거된 데 따른 현상이라고 풀이했다.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분석만으로는 과거 벤 버냉키 연준 의장 시절에 경험했던 테이퍼링 후 금융시장의 혼란상을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지금의 안정된 시장 모습은 수도 없이 거듭된 사전 예고 등 연준의 조심스러운 행보에 더 크게 기인한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전문가들 다수도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즉, 정책적 이유로 시장이 싫어할 일을 하되 정책 담당자들이 인내심을 갖고 장기간에 걸쳐 예측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펼쳐온 덕분이라는 얘기다. 물론 이는 올바른 방향 설정 능력과 그에 대한 자신감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테이퍼링 일정을 발표한 당일에도 “테이퍼링 결정이 금리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는 직접적 신호는 아니다”라며 시장 달래기에 나섰다. 그는 또 최대 고용 달성까지는 아직 갈 길이 남아있다고 밝힘으로써 금리 인상 여건이 아직 덜 무르익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금리 인상의 또 다른 조건인 고물가에 대해서도 그는 “일시적으로 예상되는 요인”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오래 전부터 예고했던 대로이긴 하지만 정책방향을 완전히 되돌리며 번연히 돈줄 죄기를 시작하면서도 시장 참여자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 할 만했다.

파월 의장과 연준의 이런 노력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진작부터 그런 노력을 펼쳐온 덕에 시장은 연준의 통화정책 방향을 예측할 수 있었고, 그 예측이 틀리지도 않았다. 연준으로서는 방향을 180도 전환하면서도 시장에 면역력을 키워줌으로써 나름의 정책의지를 저항 없이 관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흔히 말하길 경제는 심리라고 한다. 정책이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변동성이 최소화될 때 시장은 불안감을 떨치고 안정을 유지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라야 새로운 정책의 연착륙도 가능해진다. 통화정책 담당자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경제정책 당국자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점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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