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소수 공급난이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정부가 중국·베트남 등으로부터 부랴부랴 임기응변용 요소 물량을 들여오기로 했고, 사실상의 요소수 배급제인 긴급수급조정 조치를 취하고 나섰지만 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요소수 부족 사태가 국가경제와 산업계 차원을 넘어 우리의 일상까지 직격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그 배경에 깔려 있다. 심리적 동요는 일부 시민들의 생필품 사재기로 이어졌다.

생필품 사재기는 분명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다. 하지만 사재기 대열에 합류하는 이들을 무작정 나무랄 수도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불과 1년여 전에 마스크 공급난을 겪은 시민들이 요소수 품귀 현상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나는 요소수 판매처의 장사진은 마스크 공급난의 악몽을 되살리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이번 사태는 예상되는 파급효과 면에서 마스크 대란에 비할 바가 아니다. 마스크 공급난이 개개인의 건강과 활동성에 지장을 초래하는 데 그쳤던 것과 달리, 요소수 공급난은 속히 해소되지 않을 경우 우리 사회 전반에 연쇄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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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화물차들이 움직이지 못해 물류대란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산업물자와 생필품 등의 공급난이 전국에 걸쳐 나타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현상이 사재기다. 산업생산 감소 속에 상품 사재기까지 가세하면 공급과 수요 측면 모두에서 물가상승 압력이 커져서 폭발적인 인플레이션이 유발될 수 있다.

요소수 공급난은 화물차 외에 긴급 출동 차량과 쓰레기 수거 차량들의 발을 묶을 수도 있고, 화력발전 가동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생각하기조차 싫지만 현대인들의 삶에서 필수 서비스가 된 택배가 끊어질 수도 있다. 그 파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를 지경이라 말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어이없게도 이번 요소수 품귀 사태는 발생 과정 면에서 2년여 전의 일본발 반도체 소재 공급난을 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또 한 번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졌다는 것은 과거의 아픔과 실패를 교훈으로 승화시키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반도체 소재 공급난이 그랬듯이 요소 품귀사태는 주요 공급 국가가 갑작스레 수출 규제를 단행함으로써 발생했다.

요소수 공급난의 발생 및 전개 과정을 보면 가장 큰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정부의 무능과 게으름이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결정적 이유였다는 얘기다.

주지하다시피 요소수의 원료인 요소는 대부분 값싼 석탄에서 추출된다. 그리고 우리의 주된 요소 수입처인 중국이 석탄 부족에 시달린다는 것은 이미 지난 연말부터 알려져 있었다. 이를 남의 일로만 보았던 게 정부의 첫 번째 실책이었다.

요소 수출 규제의 구체적 신호를 묵살한 것은 더 큰 실책이었다. 중국 세관 당국은 지난달 11일 고시를 통해 요소 수출에 대한 검사를 강화한다고 공표했다. 하지만 이 역시 우리 정부엔 남의 일일 뿐이었다. 중국 현지에 대사관 말고도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 소속 무역관 10개 이상을 설치해 놓고도 청와대는 한 달이 다 되도록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했다. 청와대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해 이 문제를 처음 논의한 시점은 이달 4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코트라와 외교부 등이 관할 부처 및 장관에 대해 늑장보고를 한 사실도 국회 관련 상임위의 질의응답을 통해 드러났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가 중국의 조치 내용을 접수한 지난달 21일부터라도 정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더라면 사태가 이 지경으로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고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은 탓에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한·중외교장관회담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지 못했다. 오히려 요소 관련 답변을 준비했음직한 중국 쪽에서 이상하다 여겼을 가능성이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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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사후 대응 방식도 문제 투성이이다. 정황상 대국민 사과부터 해야 할 대통령이 별일 아니라는 듯 “지나친 불안감을 갖지 말기를 당부드린다”고 말한 것은 국민들의 화만 돋구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자세는 청와대가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뿐 불안감 해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법은 오직 하나 결실을 내놓는 일이다. 중국이든 베트남이든 요소 생산국들로부터 필요한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만이 국민들의 불안감을 달래줄 유일한 방안이다. ‘불안해하지 말아달라’는 당부는 그 다음에 하는 게 순리에 맞다.

장기적 대책을 마련해 국민 앞에 제시하는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하찮아 보였던 요소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은 만큼 안정적인 수급 체계를 설계하는 일이 그것이다.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일정 정도 자급 능력을 갖추도록 지원책을 마련하는 한편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나아가 요소처럼 비교우위 논리에 따라 수입 의존도가 높아진 소재나 부품, 특히 특정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품목들을 점검하고 해당 품목에 대한 수급안정화 대책을 대대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요소수 공급난은 ‘린치 핀’과 같은 또 다른 소재·부품들의 품귀 가능성에 대한 엄중한 경고라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이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임으로써 물품 구입을 위한 줄서기와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배급제가 더는 재연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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