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천옥현 기자]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중 하나로 등장한 게 성인지 감수성이다. 해묵은 이슈이지만 성인지 감수성은 이제 입에 올리기조차 조심스러워진 민감한 주제가 되고 말았다.

사실 성(젠더) 문제는 종교 이슈와 함께 언론들도 오래 전부터 함부로 침범해서는 안 되는 민감한 영역으로 취급해왔다. 다뤄본들 득은 별로 없고 실만 많은 게 이들 두 가지 이슈였던 탓이다. 같은 이유로 이들 이슈는 정치인들에게도 금줄이 쳐진 불가침의 영역으로 인식돼왔다.

젠더 문제와 관련해서는 수년 전까지만 해도 언론이나 남성 정치인들이 경계했던 대상은 여성들의 집단적 저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양상이 달라졌다. 피해자 개개인의 ‘미투’ 고백만으로도 얼마든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만한 환경이 조성돼 있어서이다. 그 배경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같은 1인 미디어의 보편화가 자리하고 있다. 물론 여성들의 의식변화도 하나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사진 =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연합뉴스]
[사진 =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연합뉴스]

하지만 세월이 흘렀어도 거의 변하지 않은 것 하나가 있다. 성인지 감수성 부재의 주체는 남성이고 그 피해자는 여성이라는 공식 아닌 공식이 그것이다. 이는 오늘날 성인지 감수성 논란을 야기하는 중요한 단초 중 하나다.

두 번째로 지적할 점은 성인지 감수성의 추상성이다. 그 유무를 가르는 기준이 추상적이다 보니 관심법 수준의 인지 능력을 지니지 않는 한 가해의 고의성 없이 한 언행조차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 두 가지 특성을 두루 내포한 사건이 최근 불거진 서울우유 젖소광고 사건이 아닌가 싶다. 이번 사건은 서울우유가 자사 제품 광고물을 기획해 만든 뒤 그것을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SNS에 미리 공개한데서 비롯됐다.

문제의 동영상 광고물은 카메라를 든 한 남성이 덤불 숲으로 둘러싸인 드넓은 목초지의 젖소들을 카메라로 촬영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도입부 영상은 자막으로 촬영 장소가 ‘강원도 철원군 청정지역’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어 사진작가인 듯한 남성이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서 물을 마시는 사람들을 발견한다. 등장인물들은 하나 같이 팔과 다리를 가린 긴 흰옷을 입고 있었다. 계곡물과 풀잎의 이슬을 마시는 모습 등의 여성들이 주로 부각되긴 했지만 흰옷 무리 속엔 남성들도 포함돼 있었다. 순간적으로 고개를 쳐든 남성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기도 했다.

화면은 곧 이들 흰옷 무리가 탁 트인 목초지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으로 바뀐다. 카메라맨은 이 과정을 숨은 채로 촬영한다. 그러자 잠시 후 흰옷의 인물들은 모두 젖소로 변신한다. 화면이 빠르게 바뀌는 동안에는 등장 캐릭터들이 청정자연의 깨끗한 물을 마시면서 친환경적으로 생활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자막이 지나간다.

해당 동영상은 서울우유가 청정자연 환경 속에서 건강하게 자란 젖소들이 생산한 신선한 우유를 판매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만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광고물은 공개한지 얼마 안 돼 큰 파장을 일으켰다. 동영상을 본 누리꾼 일부가 ‘여성을 젖소에 비유했다’거나 ‘남성(카메라맨)이 여성들을 도촬(몰래 촬영)했다’라는 주장을 댓글로 표출한 것이 시발이었다. 이 같은 댓글 주장은 순식간에 다수의 호응을 얻었고, 일부 매체들에 의해 기사화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서울우유는 문제의 광고물을 SNS에서 모두 삭제하고 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서울우유가 누리꾼들의 집단 질타에 즉각 두 손을 들고 파문 해소에 나섰지만 이번 사건은 개운찮은 뒷맛을 남겼다. 문제의 동영상이 과연 ‘여혐’ 의도를 담은 것인지, 실제로 그런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는지에 대해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동영상이 여성들의 얼굴을 유별나게 클로즈업시킴으로써 논란의 불씨를 제공한 점까지 애써 두둔할 생각은 없다. 또 과거 서울우유가 여성 누드모델들을 동원해 헤어누드 사진을 찍은 뒤 광고물로 이용한 사건을 무시하고 싶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동영상물의 감상 과정에 젠더 문제를 개입시키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해당 동영상물은 보기에 따라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행위예술 작품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문제는 보는 이들의 관점이다. 극도로 과민해진 성인지 감수성이 광고물을 엉뚱하게 해석하는 결과로 이어진 건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출산과 수유를 ‘애나 낳고 수유나 하는’ 일 정도로 깎아내리려는 은근한 마음이 오히려 우리의 일상 속 행동마저 성인지 감수성 부재의 악덕으로 호도하는 결과를 초래한 건 아닌지 돌아보자는 얘기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여성과 남성을 불필요하게 구분해 보려는 시각일 수 있다. 우리가 진정 젠더 간 화합이 이뤄지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면 요즘 모 TV프로그램 속의 축구하는 ‘그녀’들 앞에 붙은 ‘골 때리는’이란 수사부터 없애야 할 것이다. 성인지 감수성 부재 못지않게 과민한 성인지 감수성 또한 젠더 간 화합을 해치는 심각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