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긴축시계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연준은 지난 15일(이하 현지시간) 통화정책 회의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끝낸 뒤 자산매입 축소 프로그램(테이퍼링)의 진행속도를 두 배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내년 6월로 예정했던 테이퍼링 종료 시점을 3개월 앞당기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는 곧 기준금리 인상이 가능한 시점을 그만큼 앞당기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준은 지난 달부터 테이퍼링을 실시하면서 시장에서 사들이던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 등 자산의 규모(월 1200억 달러)를 매달 150억 달러씩 줄이기 시작했다. 자산 매입을 통해 시중에 공급하던 달러의 양을 매달 그만큼씩 줄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기존 계획대로라면 테이퍼링 작업은 내년 6월 종료된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내년 4월부터는 연준의 자산 매입이 제로 상태에 도달하게 됐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의 기자회견 모습.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의 기자회견 모습.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이날 연준은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그러나 내년 중에만 세 차례까지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금리 인상 예고는 점도표를 통해 이뤄졌다. 점도표는 통화정책 회의에 참여하는 연준 위원 18명의 향후 기준금리 전망을 표시한 도표다. 점도표는 금리 인상 시점과 폭에 대한 각자의 전망이 보여지도록 도표상에 위원 전원이 일일이 점을 찍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번에 연준이 공개한 점도표에 따르면 위원 다수는 내년 미국의 기준금리 수준이 0.75~1.00%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가 0.00~0.25%인 점을 고려하면 내년에만 최대 세 차례 기준금리 인상이 단행될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물론 연준이 매번 금리를 0.25%포인트씩 올리는 ‘베이비 스텝’을 취한다고 가정할 경우 그렇다는 얘기다. 또 연준 위원들의 전망은 경제상황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바뀔 수 있다.

연준은 향후의 금리 인상이 가능한 시점에 대해 “물가 상승률이 2%를 넘고 노동시장이 완전고용에 도달했다고 판단될 때”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지금의 물가 상황을 감안할 때 고용 상황만 웬만큼 더 좋아지면 금리인상을 검토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연준은 이번 조치를 취하면서 경제 전망 변화에 따라 테이퍼링 속도가 조절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변이 없는 한 유동성 공급 축소 프로그램은 기존 계획보다 3개월 빨리 종료될 것이 확실시된다.

연준은 긴축 속도를 높인 이유로 “인플레이션이 심화하고 있고, 노동시장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을 거론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가 연준의 물가관리 목표치인 2%를 장기간에 걸쳐 크게 상회하고 있고, 고용 상황도 빠른 회복세를 보인다는 시각을 드러낸 것이다. 다만 고용상황에 대해서는 아직 연준의 목표인 완전고용에 다다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장기적 인플레이션은 연준의 정책 방향을 긴축 쪽으로 돌리는데 있어서 큰 작용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달까지 5개월 연속 5% 이상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11월 CPI는 1년 전에 비해 6.8%나 치솟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연준의 기존 판단이 잘못됐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연준은 그간 인플레이션을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해왔다.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라는 게 연준이 얼마 전까지 취해온 입장이었다.

상황 변화는 이번 통화정책 회의 이후에 나온 연준의 성명 내용에도 반영됐다. 연준은 이번에 발표한 성명에서 인플레이션이란 단어 앞에 붙어 있던 ‘일시적’이란 표현을 삭제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날 FOMC 회의 종료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 물가에 대한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미국 물가가 내년말까지 2% 가까이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높은 물가상승률이 고착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란 점을 전제로 한 전망이었다. 내년 말 실업률에 대해서는 3.5%라는 새로운 전망치(기존 3.8%)를 제시했다. 고용이 연준의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개선되고 있음을 나타낸 전망이라 할 수 있다.

연준이 긴축 강도를 높이면서 한국은행의 향후 행보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이 내년 상반기부터 기준금리를 수차례 올리기 시작하면 우리와 미국의 금리 차가 급격히 줄어들 수 있어서이다.

현재 미국과 한국의 정책금리 차이는 0.75~1.00%다. 우리가 1.00%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반해 미국의 기준금리는 0.00~0.25%에 머물러 있다.

만약 우리가 금리를 묶어둔 상태에서 미국이 기준금리를 연이어 올려 금리차가 제로에 가까워질수록 한은은 강한 긴축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금리차가 거의 없어지거나 역전될 경우 달러 등 외화 자금의 국외로의 이탈이 나타날 수 있다. 당장은 아니라 할지라도 약간의 충격에 금융시장이 흔들리면 달러화 등의 이탈이 급속도로 이뤄질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한은은 그렇지 않아도 이미 기준금리 인상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이주열 총재는 지난달 기준금리를 1.00%로 올리면서 우리의 금리 수준이 여전히 완화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직도 금리가 적절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시사한 발언이었다. 이 총재는 한 발 더 나아가 “내년 1분기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필요는 없다”고 부연했다.

이 총재의 말을 종합하면 한은이 기준금리를 1.00%로 올린 가장 큰 이유는 금리 정상화였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가계부채 증가와 자산가격 상승 등으로 대변되는 금융 불균형 해소에 주안점을 두고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러나 이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임박해짐으로써 한은은 외화자금 유출과 원화 가치 하락 등에 대해서도 함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됐다. 이로 인해 다수 전문가들은 한은이 내년 1~2월 중 기준금리를 한 차례 올린 뒤 연말까지 두 차례 더 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내년 중 세 차례나 기준금리를 올려도 그 충격을 흡수해줄 만큼 우리 경제가 탄탄한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 여부다. 가계가 부채 원리금 상환 부담을 원만히 해소할 수 있을지도 우려 사항 중 하나다.

미국의 긴축 속도 증가는 이래저래 한은의 고민을 깊게 만들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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