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정부가 전세대출 공적보증 비율을 축소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2일 이 같은 내용 등을 포함한 ‘2022년 금융정책 추진방향’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정부는 이 방침이 지닌 폭발성을 고려해 시간을 두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번 보고를 통해 금융 당국의 정책 방향은 분명히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전세대출 공적보증이란 전세 세입자에게 은행이 대출해준 돈의 80% 이내에서 공공 보증기관이 보증을 해주는 제도다. 이 제도 덕분에 은행들은 전세대출을 받은 사람이 ‘깡통 전세’ 등에 묶여 빌린 돈을 갚지 못할 경우 공공 보증기관으로부터 손실의 대부분을 보상받을 수 있다. 결국 전세대출 공적보증은 공적자금을 이용해 은행의 전세대출 미회수로 인한 손실을 메워주는 제도라 할 수 있다.

이 제도 도입 이후 은행들 사이에서는 5억 이하의 범위에서 전세보증금의 80%를 대출해주고 대신 보증기관들로부터 대출금의 90% 이상을 보증받는 일이 일반화됐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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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공적보증 업무를 행하는 공공 보증기관으로는 한국주택금융공사(주금공)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있다. 또 하나의 보증기관인 SGI서울보증은 민간기관이므로 이곳에서 제공하는 보증 서비스는 공적보증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다. 굳이 개념을 분류하자면 사적보증이라 할 수 있다.

운용하는 자금의 출처가 다른 만큼 보증금 한도에도 차이가 있다 공적보증 서비스 주체인 주금공과 HUG의 보증금엔 상한선(수도권 5억원)이 설정돼 있으나 서울보증엔 한도가 없다. 서울보증도 한 때 한도 설정을 검토했으나 실수요자 피해 등을 우려해 현행대로 초고가 전세에 대해서도 대출 보증을 계속해나가기로 했다.

서울보증이 한도 설정을 고민하던 당시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한도가 9억보다는 높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서울보증이 이달 초 한도 설정을 하지 않기로 최종 결론을 내리자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초고가 전세라 할지라도 대출을 제한하는 것은 실수요자에게 타격이 갈 수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2015년 시작된 전세대출 공적보증 제도의 궁극적 목적은 서민주거 안정이다. 서민들에게 전세대출 보증을 지원함으로써 주거안정을 꾀하기 위해 마련됐다는 의미다. 그런 만큼 규제 수준도 낮은 편이다. 일례로 전세대출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지난달 말 기준 주금공과 HUG 두 기관의 전세대출 보증잔액은 126조원으로 늘어났다.

정부가 청와대에 보고한 이번 방침은 금융안정성을 제고하는 한편 은행들의 책임감을 고조시킬 목적으로 기획됐다고 볼 수 있다. 직접적이고도 일차적인 목적은 은행들이 전세대출금 미회수에 대한 위험을 공유하도록 유도하는데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전세대출 미회수로 인한 은행의 손실을 정부가 고스란히 떠안는 것을 방지하는 것도 부가적 목적에 포함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정부 방침이 현실화되면 은행에서 전세대출을 받는 일이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은행들로서는 공적보증 비율이 축소되는 만큼 위험부담을 더 많이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위험부담이 커지는 것을 빌미로 은행들이 전세대출 문턱을 한껏 높이며 고율의 이자를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워진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무주택 서민들에게 돌아갈 것으로 우려된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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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정부의 이번 계획이 실행되면 서민들의 주거 안정성은 전보다 불안해질 가능성이 있다. 방향성은 옳지만 추진 단계에서 논란이 커지고 여론이 악화될 수도 있어 정부 방침이 관철되기까지 적지 않은 난관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 당국은 그러지 않아도 고승범 금융위원장 취임 이후 가계대출을 엄격히 규제해오고 있다. 연간 가계부채 증가율에 대한 관리를 부쩍 강화해 그 비율은 올해 5~6%로 제한돼 있다. 정부는 이 비율을 내년에는 4~5% 수준으로 더 낮추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세대출까지 바짝 조이게 되면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 안정성이 크게 훼손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이 점이 곧 제도 개선에 나서되 보다 정밀한 손질이 요구되는 이유다.

금융위도 제도 개선 과정에서 나타날 부작용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회사가 전세대출 공적보증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 우량 물건에 대해서도 위험을 부담하지 않는 구조는 잘못된 것”이라며 잘못된 구조 개선이 제도 개선의 목적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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