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정부가 야심차게 설계해 내놓은 청년희망적금 프로그램이 시작 단계부터 각종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준비 부족으로 가입 신청 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진 것은 오히려 사소한 문제인 듯 보인다. 정작 중요하고도 심각한 문제는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초래되고 있는 사회 구성원 간 갈등이다. 갈등 종류도 다양하다. 세대간·청년간 갈등은 물론 수혜범주에 있는 연령대의 청년들 사이에서도 미묘한 갈등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21일부터 시중은행을 통해 가입신청을 받기 시작한 청년희망적금은 19~34세 연령대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금융상품이다. 이 상품은 청년들의 안정적인 자산관리를 지원한다는 목적 하에 정부 주도로 개발됐다. 정책 의지가 반영된 만큼 이 상품엔 연 5~6%의 이자가 붙고, 덤으로 저축장려금과 세제혜택이 주어진다. 은행과 정부가 공동으로 청년층의 재산 증식을 돕기 위해 판매하는 상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이 적금에 가입하면 사실상 연리 10%대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단, 조건이 있다. 월 납입한도가 50만원으로 제한되고 연봉(총급여) 3600만원을 넘는 청년들은 가입 대상이 될 수 없다.

파격적인 조건의 상품이 판매되기 시작하자 생년 끝수에 따라 5부제를 적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청 첫날부터 가입 희망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 바람에 일부 은행들에선 앱이 최대 2시간가량 접속장애를 일으키기도 했다. 접속 장애 사실은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통해 전파됐고, 그로 인해 다급해진 마음에 희망자들이 더 몰리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준비 부족이 낳은 예측가능했던 혼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해결 가능한 기술적 문제에 불과할 뿐이다. 접속 장애와 신청자 폭주, 기타 개인 일정 등의 문제로 5부제 기간(21~25일) 중 신청을 마치지 못한 이들에게도 정부는 추가로 기회를 제공키로 했다.

따라서 시작 단계의 혼선도 그 자체로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대세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아니라 할 수 있다. 진짜 큰 문제는 청년희망적금 신청 과정에서 벌어지는 아우성을 오히려 부러운 눈초리로 지켜보아야 하는 이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이다. 그들 중에는 19~34세 사이에 있는 청년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이는 사회갈등의 새로운 씨앗이 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잉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갈등을 대변해주듯 인터넷상의 언론 기사들에는 불만을 토로하는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댓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표적 키워드는 편가르기와 차별이었다. 청년만 국민인지를 따져묻는 중장년층인 듯한 사람들의 불만이 등장했는가 하면 이번 조치를 ‘청년 간 편가르기’로 보는 시각도 드러났다. 전자의 불만은 정부가 청년정책만 쏟아낸다는 주장으로, 후자의 불만은 연봉 3600만원 이상을 받는 청년은 이 나라 청년이 아니냐는 반문으로 표현되고 있다.

특히 심각해 보이는 건 같은 연령대의 청년인 듯 보이는 이들이 쏟아내는 불만들이다. 그들의 불만을 보고 있자면 과연 이게 옳은 길인가 하는 의문이 절로 들게 된다. 그들이 쏟아내는 댓글엔 ‘사기와 욕구를 꺾는다’, ‘부모들이 적금을 대신 내줄 것’이라는 취지의 불만도 포함돼 있다.

청년희망적금의 가입 기준대로 하자면 대기업이나 웬만한 중견기업에 갓 입사한 사회초년생들도 이 상품의 혜택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그 수준 이상의 연봉을 받는다 해서 스스로를 고소득층이라거나 부유층이라 여길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부모로부터 장차 집을 물려받을 희망마저 없는 청년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청년이 연봉 5000만원 이상을 받는다 한들 부모 잘 만난 연봉 3600만원 이하 청년보다 나을 점이 하나도 없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이런 현실이니 이번 프로그램에서 소외된 청년들이 분노하며 불만을 나타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들로서는 조금 더 좁은 문을 뚫고 비교적 선호도가 높은 직장에 들어간 게 죄라 여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이대를 특정 연령에서 두부모 자르듯 가른 것도, 소득을 기준 삼아 도 아니면 모식으로 혜택을 주겠다는 것도 모두 잘못된 일이다. 우리는 이미 재난지원금 선별지원 논란을 치르는 과정에서 비슷한 부작용을 경험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특정한 대상에 한해 금전적 혜택을 주겠다는 발상을 한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매사가 이런 식이니 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세금 내는 사람 따로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정말로 심각한 사실은 이런 유의 편가르기 정책이 다분히 의도적으로 발의된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런 방식은 과정의 공정성이나 결과의 정의로움을 논하기 이전에 기회의 평등 정신에도 위배된다. 한정된 재원을 활용해 순수하게 사회초년생들의 자산 증식을 도울 요량이라면 ‘취업1년차 희망적금’ 등의 방식으로 고르게 혜택을 주는 방식도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청년희망적금에는 100% 순수한 목적에서 만들어졌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내용도 그러려니와 상품의 출시 시점이 묘하다는 점도 그런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게 한다. 하지만 상품 기획의 저의가 무엇이든 결코 바뀔 수 없는 것은 연봉 3600만원 이상을 받는 청년도 엄연한 대한민국 청년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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